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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극장에서 처음 봤을 때는 그냥 눈물 좀 나는 영화겠거니 했는데, 집에 돌아오는 내내 아버지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한 편의 영화가 이렇게 오래 마음에 남을 줄은 몰랐습니다. 1950년대 흥남철수작전부터 1980년대 이산가족 찾기까지, 격변하는 한국 근현대사를 한 남자의 삶에 압축한 이 영화는 개봉 당시 누적 관객 1,400만 명을 동원하며 역대 흥행 4위를 기록했습니다. 숫자만 놓고 봐도 이 영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어딘가를 건드렸는지 짐작이 됩니다.

    국제시장 사진
    국제시장 사진

    흥남철수와 파독광부, 제작진이 복원한 시대

    일반적으로 영화 속 역사적 장면은 어느 정도 과장이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가 뒤에서 알게 된 제작 방식을 보니 생각보다 훨씬 치밀하게 고증이 이뤄졌습니다.

    흥남철수 장면은 부산 다대포 해수욕장에서 배우 300여 명만 섭외해 촬영한 뒤, 나머지 수만 명의 인파는 전부 VFX(시각 특수효과)로 만들어냈습니다. VFX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실제 촬영 영상에 가상의 이미지를 합성하는 기법으로, 현대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됩니다. 이 장면 하나를 위해 사전에 애니매틱(animatic)을 제작했는데, 애니매틱이란 동영상 형태로 만든 촬영 콘티로 현장에서의 시간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쓰입니다. 덕분에 수백 명이 뒤엉키는 대규모 장면임에도 촬영은 콘티 그대로 정확하게 진행됐다고 합니다.

    파독광부 장면은 체코의 실제 탄광 도시 오스트라바에서 찍었습니다. 이곳은 현재 박물관으로 보존된 곳으로, 환복 시설부터 갱도 입구까지 당시 실제 사용하던 시설을 그대로 활용했습니다. 제가 이 장면을 볼 때 유독 공기가 무겁게 느껴졌던 건, 배경이 진짜였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지하 갱도 내부는 경기도 기장에 별도 세트를 제작해 촬영했고, 갱도 붕괴 장면은 풀 CG로 구현했습니다.

    황정민 배우의 노년 분장과 젊은 시절 얼굴 역시 공을 많이 들인 부분입니다. 젊은 시절 얼굴은 단순히 가발이나 메이크업으로 처리하지 않고, CF 업계에서 페이셜 에이지 리덕션(Facial Age Reduction)을 전문으로 하는 일본 CG 회사를 섭외해 처리했습니다. 페이셜 에이지 리덕션이란 배우의 실제 얼굴을 촬영한 뒤 디지털로 나이를 젊게 되돌리는 기술입니다. 노년 분장은 007 스카이폴에 참여했던 스웨덴 특수분장팀이 맡았고, 분장 후에도 촬영 결과물에서 어색한 부분은 CG로 리터칭 했다고 합니다.

    제작진이 복원한 시대의 디테일 중 눈에 띄었던 것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1950년대 국제시장 이미지는 사진작가 최민식 선생의 사진을 다수 참고해 미술 설정에 반영
    • 영화 속 이산가족 찾기 장면은 실제 KBS 공개 스튜디오에서 촬영 후 CG로 보강
    • 전단지 수백 장은 중복 없이 감독, 배우, 스텝 전원이 직접 손으로 써서 제작
    • 독일 댄스 파티 장면은 실제 파독 광부·간호사 부부 인터뷰를 토대로 설정

    한국 현대사를 가로지른 한 남자의 희생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자꾸 저희 아버지가 겹쳤습니다. 아버지는 늘 "괜찮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는데, 나중에 커서 보니 그 말은 진짜 괜찮아서가 아니라 가족을 걱정시키기 싫어서 했던 말이었습니다. 덕수가 공부를 잠시 접어두고 독일 탄광으로 떠나고, 다리를 절며 돌아온 뒤에도 다시 베트남으로 향하는 장면에서, 그 감각이 정확히 겹쳤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영화를 신파(melodrama) 과잉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신파란 감정을 자극하는 요소를 과도하게 배치해 눈물을 유도하는 서사 방식을 말합니다. 저도 처음엔 그 비판에 어느 정도 동의했습니다. 매 시퀀스마다 고비가 찾아오고, 극적 긴장이 반복되는 구조는 확실히 피로감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조금 달랐습니다. 제가 진짜 마음에 걸렸던 건 신파의 양이 아니라, 덕수의 희생이 너무 자연스럽게 당연한 것으로 처리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장남이니까, 가족이 있으니까, 아버지가 부탁했으니까. 그 이유들은 모두 납득이 가지만, 영화는 그 구조 자체에 대해선 별로 질문을 던지지 않습니다. 가족을 위한 희생을 존중하는 것과, 그 희생을 미화해 당연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분명히 다른 문제입니다.

    한국전쟁과 산업화 시기를 거친 세대의 삶의 무게는 실제 수치로도 확인됩니다. 1960년대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약 80달러 수준에 불과했으며, 이 시기 파독 광부·간호사 파견 사업은 국가 외화 수입의 상당 부분을 담당했습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덕수 한 명의 이야기가 그토록 많은 사람을 울린 건, 그 시대를 실제로 살아낸 세대가 저 장면 속 어딘가에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이 영화가 남기는 것

    영화를 다시 보고 나서 제가 가장 오래 머물렀던 장면은 마지막이었습니다. 덕수가 혼자 방에 앉아 돌아가신 아버지를 향해 "내 진짜 힘들었거든요"라고 말하는 그 한 문장. 평생 "괜찮다"고만했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자리에서야 겨우 꺼낸 말이었습니다. 제가 예상 밖으로 이 장면에서 무너졌던 건, 그게 덕수만의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미술 감독 류성희는 아가씨, 암살, 괴물 등 굵직한 작품을 맡았던 분으로, 프리 프로덕션에만 4개월, 세트 완성까지 3개월을 투자했습니다. 그렇게 물리적으로 복원된 시대 위에 얹힌 건 결국 "그 시절 아버지들은 어땠을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가족 부양 스트레스가 세대를 가리지 않고 반복되고 있다는 점은 여러 연구에서도 확인됩니다. 가족 관계와 세대 간 역할 부담에 관한 연구는 꾸준히 축적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가족학회).

    국제시장은 감동적인 영화이면서 동시에 불편한 질문을 남기는 영화입니다. 그 시절 희생한 분들에 대한 존중과, 오늘 우리가 누군가에게 당연하게 짐을 지우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성찰, 두 가지를 같이 가져가는 게 이 영화를 제대로 보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신 분이라면, 부모님과 함께 보시는 걸 권합니다. 대화는 그 이후에 시작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WQUkndzfUJ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