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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가볍게 웃고 넘어갔던 영화라 다시 볼때 저는 이번에도 그냥 가볍게 웃고 끝낼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결혼한 부부가 티격태격하는 코미디쯤으로 봤는데, 다 보고 나서 씁쓸한 기분이 한참 남았습니다. 2012년 개봉 당시 459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 지금 다시 봐도 낡지 않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권태기,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실제는 달랐습니다

    결혼 후 권태기(倦怠期)가 찾아온다는 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여기서 권태기란 처음의 설렘이 사라지고 상대방의 존재가 당연하게 느껴지면서 관계가 무감각해지는 시기를 뜻합니다. 일반적으로는 결혼 3~4년 차에 찾아온다고들 하는데, 제가 주변 부부들을 지켜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습니다. 어떤 경우엔 1년도 채 안 돼서 온 것 같기도 했고, 또 어떤 부부는 10년이 넘어도 여전히 다정했습니다.

    영화 속 두현과 정인도 7년의 시간이 흐르자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일본 나고야에서 지진 속에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설레는 감정은 온데간데없고, 두현은 정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지쳐가는 모습입니다. 제가 아는 결혼한 지인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연애할 때는 그 말투까지 귀여웠는데, 같이 살다 보니 왜 이렇게 신경 쓰이는지 모르겠다"고요. 처음에는 웃으면서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표정을 보니 반쯤은 진심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게 어느 한쪽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두현의 입장에서는 정인의 끝없는 잔소리와 히스테리가 감옥처럼 느껴지지만, 반대로 정인 입장에서는 남편이 출장을 핑계로 점점 멀어지는 게 외로움으로 쌓였을 겁니다. 영화가 코미디 장르임에도 어느 순간 웃음보다 "저 부부 저러다 진짜 망가지겠다"는 걱정이 앞섰던 건 그 때문이었습니다.

    한국가족학회 연구에 따르면 부부 갈등의 주요 원인 1위는 '의사소통 방식의 차이'로 꼽히는데(출처: 한국연구재단 KCI), 이 영화가 딱 그 지점을 건드립니다. 두현은 말을 줄이고, 정인은 말이 넘쳐흐릅니다. 서로 다른 언어로 대화하는 셈이었던 거죠.

    • 권태기는 특정 시점에 찾아오는 게 아니라 소통이 단절될 때 시작됩니다
    • 상대방의 행동이 문제가 아니라, 그 행동이 반복되면서 쌓이는 피로감이 문제입니다
    • 어느 한쪽만 참고 버티는 구조는 결국 양쪽 모두를 지치게 만듭니다
    요약: 권태기는 갑자기 오는 게 아니라 소통 단절이 쌓여 천천히 찾아오며, 영화는 그 과정을 코미디 안에 사실적으로 담아냈습니다.

     

    소통 부재가 만든 극단적 선택, 그리고 영화의 한계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설정은 남편 두현이 카사노바 성기에게 아내 정인을 유혹해 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 볼 때는 그냥 황당한 코미디 장치라고 넘겼는데, 다시 보니 이 설정 자체가 '직접 대화하는 것보다 도망가는 게 쉽다'는 심리를 극단적으로 표현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부 상담(couple therapy)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갈등의 원인을 찾고 소통 방식을 바꾸는 과정인데, 두현에게는 그 선택지가 처음부터 없었던 겁니다. 대화 대신 회피를 선택한 거죠.

    제가 직접 봐온 부부 갈등 사례도 비슷했습니다. 집에서 양말 하나, 청소 방식 하나로 불거진 다툼이 결국 "나랑 말이 안 통한다"는 감각으로 굳어지는 과정이었습니다. 문제는 행동 자체가 아니라 그 행동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습니다. 영화의 두현도 결국 직접 "나 힘들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없습니다. 그게 현실적이기도 하고, 동시에 가장 아쉬운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아르헨티나 원작 〈내 아내의 남자 친구〉를 리메이크한 이 작품은 로맨틱코미디(romantic comedy)라는 장르적 문법 안에서 최대한 현실적인 감각을 살렸습니다. 로맨틱코미디란 사랑과 갈등을 유쾌한 방식으로 풀어내되 결국 해피엔딩으로 수렴하는 장르를 말하는데, 이 영화는 그 틀 안에서 꽤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왜 사람들은 솔직하게 말하는 대신 다른 방법을 찾는가, 하고요.

    다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현실의 부부 갈등은 영화처럼 제3자의 개입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조사에 따르면 부부 갈등 해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 1위는 '충분한 대화와 경청'이었습니다(출처: 결혼정보회사 듀오). 영화가 웃음을 위해 선택한 설정이 현실과 멀어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그래서 중반 이후 성기와 정인의 감정선이 깊어질수록, 저는 웃으면서도 "저 방식은 현실에선 절대 안 통하는데"라는 생각을 계속 했습니다.

    그럼에도 류승룡과 임수정, 두 배우의 호흡은 정말 탁월했습니다. 특히 임수정이 연기한 정인 캐릭터는 과장과 현실 사이 어딘가에 절묘하게 걸쳐 있어서, 피로하게 느껴질 수 있는 캐릭터임에도 미워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 경험상 저런 유형의 사람이 실제로 주변에 꽤 있거든요. 과하게 표현하는 방식이 사실은 외로움에서 비롯된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마냥 답답하게만 볼 수가 없었습니다.

    요약: 영화 속 극단적 설정은 소통 부재가 얼마나 사람을 이상한 선택으로 몰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장치이며, 과장된 코미디 안에 현실적인 감각이 담겨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내 아내의 모든 것, 지금 봐도 재밌나요?

    A. 제가 직접 다시 봤는데, 2012년 영화치고 연출이나 코미디 감각이 전혀 낡지 않았습니다. 부부 사이의 현실적인 감각을 유쾌하게 담아낸 덕분에 시간이 지나도 공감 포인트가 살아있습니다. 처음 보는 분이라면 더 신선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Q. 원작인 아르헨티나 영화랑 많이 다른가요?

    A. 기본 설정은 유사하지만 한국판은 캐릭터의 감정선과 코미디 톤을 훨씬 과감하게 살린 편입니다. 일반적으로 리메이크는 원작보다 떨어진다는 인식이 있는데, 이 경우엔 한국 정서에 맞게 잘 재해석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원작을 먼저 보지 않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Q. 결혼 안 한 사람도 공감할 수 있는 영화인가요?

    A. 제 경험상 오히려 결혼 전에 보는 게 더 신선할 수 있습니다. 결혼생활보다는 '익숙해진 관계에서 생기는 권태와 소통의 문제'가 주제에 가깝기 때문에, 연애 중인 사람에게도 충분히 공감 가는 장면들이 많습니다.

     

    Q. 임수정 캐릭터가 너무 과한 거 아닌가요?

    A. 저도 처음엔 그렇게 느꼈습니다. 일반적으로 로맨틱코미디 여주인공은 사랑스러운 방식으로 과장된다고 알려져 있는데, 정인 캐릭터는 피로할 정도로 밀어붙이는 방식이라 호불호가 갈립니다. 다만 그 과함이 결국 외로움과 불안에서 비롯된 거라는 걸 알게 되면 보이는 게 달라집니다.

     

    결론

    〈내 아내의 모든 것〉은 단순한 로맨틱코미디가 아닙니다. 제가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느낀 건, 사랑이 식는다는 게 갑작스러운 사건 때문이 아니라 쌓이지 않은 대화, 꺼내지 못한 감정들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점이었습니다. 두현이 직접 "힘들어"라고 말했더라면, 정인이 "나 외롭다"고 솔직하게 꺼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 영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결혼생활이나 장기 연애 중에 관계가 이상하게 느껴진다면, 이 영화를 한 번쯤 같이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코미디로 시작해서 부부 이야기로 끝나는 이 영화가, 웃음보다 더 오래 남는 무언가를 줄 수 있을 겁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mlY281KtBJ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