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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봅니다. 말 잘하고 능력도 있어 보이는 누군가가 중심에 서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몰려들고 그 사람 눈치를 보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걸요. 영화 <더 킹>을 보면서 저도 비슷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꼭 검찰청이나 국회가 아니어도, 작은 조직 안에서도 권력의 작동 방식은 놀랍도록 닮아 있었습니다.

    더 킹 포스터 사진
    더 킹 포스터 사진

    권력 구조를 보여주는 방식이 달랐다

    <더 킹>의 주인공 박태수는 전형적인 입지전적(立志傳的) 인물로 시작합니다. 입지전적이란 밑바닥에서 출발해 스스로의 힘으로 성공의 자리에 오른 인물 유형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시끄러운 곳일수록 집중이 잘 된다는 특이한 체질로 전교 1등을 찍고, 서울대 입학 후 사법고시까지 한 번에 통과합니다. 얼굴까지 출중하니 세상이 그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기울어진 것처럼 보이죠.

    그런데 그런 박태수조차 감히 쳐다보지 못하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실세 한강식 검사장입니다. 이 사람은 검찰 내 권력을 한 손에 쥐면서 한국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직접 설계해 온 인물로 묘사됩니다. 영화는 박태수가 그의 라인에 올라타는 과정을 꽤 공을 들여 보여줍니다.

    제가 이 전반부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권력의 매력을 부정적으로만 그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훤칠한 배우들이 비싸 보이는 음식을 먹고 고급스러운 공간에서 어깨에 잔뜩 힘을 주는 장면들이 솔직히 말해 부럽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감독이 의도적으로 그 화려함을 먼저 충분히 보여줬기 때문에, 나중에 그것이 무너질 때 충격이 더 크게 느껴지는 구조입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도파민 보상 회로(dopamine reward circuit)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어떤 행동이 쾌감 물질 분비로 연결될 때 그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뇌의 작동 방식을 의미합니다. 흥미롭게도 연구에 따르면 권력을 획득하는 경험도 이 회로를 강하게 자극하는데, 분비되는 물질이 마약 흡입 시와 유사하다는 결과가 보고된 바 있습니다(출처: NIH National Library of Medicine). 박태수가 처음 힘의 맛을 본 게 아버지가 맞는 장면을 목격했을 때였다는 영화 속 설정이 이 연구와 묘하게 연결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영화 전반부에서 한강식 주변 권력자들의 행동 패턴은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 한 손에는 조직 폭력배를, 다른 손에는 언론을 쥐고 사건을 만들어냅니다.
    • 대통령이 누가 될지 예측하기 위해 점쟁이까지 찾아다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 조직 내 생존을 위해 윗선 라인을 타야만 한다는 암묵적 규칙이 지배합니다.
    • 이 모든 것을 다큐멘터리 형식처럼 생생하게 펼쳐 놓아 현실감을 극대화합니다.

    저도 예전 직장에서 비슷한 구도를 경험했습니다. 능력 있는 사람이 중심에 서면 처음에는 일이 잘 풀리는 것처럼 보이고, 주변 사람들도 그 사람 가까이 있으려 애씁니다. 저도 잠깐 "줄을 잘 타야 살아남는 건가"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으니까요. 그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박태수가 한강식의 라인에 올라탈 때 단순히 나쁜 선택으로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충분히 이해가 됐습니다.

    요약: <더 킹>은 권력의 추악함을 처음부터 혐오스럽게 그리지 않고, 먼저 충분히 매력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관객이 박태수의 선택에 공감하게 만드는 구조를 취합니다.

     

    박태수의 몰락이 남 일처럼 안 느껴진 이유

    영화 후반부에서 박태수는 결국 조직에 의해 버림받습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말처럼, 검찰 내 정의로운 수사망이 좁혀지면서 가장 말단에 있던 그가 제일 먼저 희생양이 됩니다. 이 지점에서 박태수가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잘 나간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사실은 대단히 잘못 나가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제 경험상 이 장면이 특히 와닿았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힘 있는 사람 주변에 몰려 있던 사람들이 상황이 바뀌는 순간 얼마나 빠르게 태도를 바꾸는지 직접 목격했거든요. 그 허무함이 꽤 컸습니다. 겉으로는 견고해 보여도, 자기 기준 없이 권력만 따라가면 그 권력이 무너질 때 같이 휩쓸릴 수밖에 없다는 걸 그때 알게 됐습니다.

    영화가 흥미로운 지점은 박태수가 죽을 뻔하다 살아남아 복수를 계획하는 방식입니다. 내부고발자(whistleblower), 즉 조직 내부에서 부정을 외부에 폭로하는 사람의 역할을 박태수 스스로가 맡게 됩니다. 그가 그 권력의 알고리즘을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같은 방식으로 방아쇠를 역방향으로 당기는 것이죠. 악의 성채가 내부자의 손에 무너지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영화는 내러티브 전복(narrative subversion)이라는 기법을 사용합니다. 내러티브 전복이란 관객이 예상하는 이야기 흐름을 의도적으로 뒤집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서술 방식을 뜻합니다. 보통의 갱스터 영화였다면 조직에서 버림받은 주인공은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는 것이 공식입니다. 그런데 <더 킹>은 그 공식을 깨고 박태수를 살아남게 만들며, 마지막을 열린 결말로 처리합니다. "그건 당신이 결정하는 겁니다. 당신이 이 세상의 왕이니까"라는 대사로 공을 관객에게 돌려버리는 겁니다.

    한국 영화진흥위원회의 분석에 따르면 2017년 개봉한 정치 스릴러 장르 영화들은 당시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관객 공감도가 유독 높게 측정됐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KOFIC)). <더 킹> 역시 개봉 당시 탄핵 정국과 맞물리면서 단순한 오락 영화 이상의 무게를 얹게 됐습니다. 감독도 당시 시대가 답답했고,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이런 영화들이 기획됐던 것 같다고 밝혔을 정도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런 류의 정치 스릴러 영화는 대부분 씁쓸한 결말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은데, <더 킹>은 해피엔딩에 가까운 결론을 냅니다. 그게 오히려 더 후련한 감을 줍니다. 다만 악인은 너무 악하게, 깨닫는 주인공은 너무 극적으로 변하는 부분이 있어 인물들이 간혹 과장돼 보이기도 했습니다. 현실 비판의 의도는 분명하지만, 그 강도를 조금 더 절제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개인적으로 남았습니다.

    요약: 박태수의 몰락과 반격은 권력 구조 안에서 자기 기준을 잃은 사람의 결말을 보여주는 동시에, 변화의 주체가 결국 개인과 대중이라는 메시지를 열린 결말로 전달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더 킹 결말이 열린 결말인 이유가 뭔가요?

    A. 감독이 의도적으로 선택한 방식입니다. 권력의 향방을 결정하는 주체가 권력자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고 선택하는 시민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대사 "당신이 이 세상의 왕이니까"가 그 의도를 직접적으로 드러냅니다. 박태수의 미래를 확정 짓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Q. 더 킹에서 한강식 검사장은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건가요?

    A. 공식적으로 특정 실존 인물을 모델로 했다고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영화 제작에 참여한 관계자들도 한국 현대 검찰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조합한 느낌이 있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소년 급제, 즉 대학 재학 중 사법시험 합격 후 빠른 승진 코스를 밟는 엘리트 검사의 구도는 실제 검찰 내 엘리트 코스와 유사하게 설계됐습니다.

     

    Q. 더 킹이 전작 관상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나요?

    A. 두 영화 모두 한재림 감독의 작품으로, 비범한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권력의 속성과 부딪히는 구조를 공유합니다. <관상>의 주인공이 뛰어난 관상 능력으로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비극을 맞이하는 것처럼, <더 킹>의 박태수도 남다른 능력으로 권력 핵심에 진입했다 결국 그 구조에 의해 튕겨납니다. 두 영화 모두 힘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시도가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연결됩니다.

     

    Q. 더 킹은 재미 위주 영화인가요, 메시지 위주 영화인가요?

    A. 두 가지를 함께 잡으려 한 영화입니다. 전반부는 박태수의 성공 서사를 코믹하게 빠르게 전개하며 오락적 재미를 주고, 후반부에서 점차 무게를 더합니다. 다큐멘터리 형식을 섞은 연출 방식 덕분에 낯설 수 있지만, 이 구성이 현실감과 몰입감을 동시에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제 경험상 두 번 보면 전반부에 숨겨진 복선들이 보여 더 재밌습니다.

     

    결론

    <더 킹>은 권력의 속성을 딱딱하게 고발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을 충분히 매력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박태수가 왜 그 길을 선택했는지 관객이 납득하게 되고 그래서 몰락할 때 더 씁쓸합니다. 저도 작은 조직 안에서 비슷한 구도를 경험했던 기억이 있어서인지, 이 영화의 메시지가 남 얘기처럼 들리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이 대단한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그들을 선택하고 심판하는 사람들에게 있다는 마지막 메시지는 꽤 오래 남습니다. 정치 스릴러 장르를 좋아한다면 한 번쯤 볼 만한 영화이고, 보고 난 뒤에는 주변 조직 안에서 자신이 어떤 태도로 있었는지를 한 번 돌아보게 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Z2mPACyvev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