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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처음엔 그냥 마약 수사물이겠거니 했습니다. 유튜브에서 영상 하나를 보다가 1,500원에 독전을 구매할 수 있다는 걸 알고 큰 기대 없이 틀었는데,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이 영화, 단순한 범죄 스릴러가 아니었습니다.

독전 사진
독전 사진

이선생이라는 존재,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혹시 영화를 보면서 이선생이 도대체 누구인지 궁금해서 화면에서 눈을 못 뗀 적 있으신가요?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상태였습니다.

독전은 마약 조직의 정점에 있는 인물 이선생을 추적하는 범죄 스릴러입니다. 여기서 스릴러(thriller)란 극도의 긴장감과 반전을 통해 관객의 심리를 자극하는 장르를 말합니다. 독전은 이 장르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이선생이라는 존재 자체를 하나의 미스터리로 만들어 버립니다. 영화 내내 이선생은 등장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인물의 행동을 지배합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바로 이 구조였습니다. 이선생이라는 캐릭터를 실체 없이 공포로만 채워 넣는 방식이 처음에는 답답하게 느껴졌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그게 의도된 연출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마약 조직에서 최상위 공급책이 어떻게 추적을 피하는지 보여주는 방식으로, 영화는 수사물보다 심리극에 더 가까운 흐름을 만들어 냅니다.

제가 아쉬웠던 점도 이 부분입니다.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 즉 인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됐는지를 보여주는 서사 구조가 이선생에게는 거의 없습니다. 마약 시장의 상위 공급망을 장악한 인물이 어떻게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지, 왜 그렇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게 됐는지에 대한 설명이 영화 어디에도 없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봐도 이 공백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독전이 기억에 남는 영화인 건 분명하지만, 이선생의 배경을 조금만 더 보여줬다면 마지막 반전이 훨씬 더 묵직하게 다가왔을 것 같습니다.

김주혁의 연기, 그리고 진하림이라는 캐릭터

예능에서 편안한 이미지로 자주 보던 배우가 이런 연기를 한다는 걸 믿을 수 있을까요?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저도 모르게 이분이 정말 김주혁 배우인가 계속 확인하게 됐습니다.

진하림은 독전에서 광기와 논리를 동시에 가진 인물로 등장합니다. 캐릭터의 몰입도를 측정하는 기준 중 하나로 영화 비평에서 자주 쓰이는 개념이 캐릭터 일관성(character consistency)입니다. 여기서 캐릭터 일관성이란 인물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내면 논리대로 행동하면서도 관객의 예상을 벗어나는 힘을 의미합니다. 진하림은 이 기준에서 봤을 때 독전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친구들과 영화를 보고 나서 이야기할 때도 스토리 얘기보다 진하림의 표정, 말투, 특정 장면에서의 반응을 더 오래 이야기했습니다. 그게 배우의 힘이라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배우가 캐릭터를 얼마나 소화했느냐가 영화 전체의 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독전으로 처음 제대로 실감했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김주혁 배우는 독전을 마지막으로 2017년 10월에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이 사실을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알게 됐는데, 그때의 먹먹함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1박 2일에서 보던 그 편안한 모습과 진하림이라는 완전히 다른 인물 사이의 간극이 그제야 더 크게 와닿았습니다. 한국 영화계에서 이런 연기 폭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가 얼마나 귀한지, 참 아쉽게 생각합니다.

독전이 개봉 이후에도 계속 회자되는 이유 중 하나는 분명히 이 연기 때문입니다. 스토리의 빈틈보다 배우의 존재감이 더 크게 남는 영화는 드뭅니다.

스토리의 한계, 그래도 볼 가치가 있는 이유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드셨던 분 있으신가요? 재밌긴 한데, 뭔가 채워지지 않은 느낌. 저도 정확히 그랬습니다.

독전의 서사 구조를 살펴보면 논플롯(non-plot) 방식에 가깝습니다. 논플롯이란 인과관계 중심으로 사건을 설명하는 대신, 인물들의 충돌과 분위기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은 강렬한 장면의 연속으로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 효과적이지만, 인물의 동기나 배경을 상세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독전이 딱 그 상황입니다. 장면 하나하나는 인상적이고 배우들의 연기는 뛰어나지만,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인물의 서사가 충분히 쌓이지 않습니다. 사용 확대리가 어떻게 그 나이에 마약 시장의 핵심 인물이 됐는지, 어린 시절 컨테이너에 갇혔던 경험이 이후 행동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등은 끝까지 설명되지 않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공백은 영화를 한 번 보고 끝내기 아쉽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고, 반대로 반복해서 찾아보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독전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도덕적 이분법(moral dichotomy), 즉 선악의 경계를 명확하게 나누는 구조를 의도적으로 피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도덕적 이분법이란 선인과 악인을 뚜렷하게 구분해 관객이 쉽게 감정이입할 수 있게 하는 서사 장치를 말합니다. 독전은 이걸 거부합니다. 형사도, 범죄자도 각자의 논리 위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누구 편에 서야 할지 계속 흔들립니다. 저는 이 부분이 불편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느껴져서 오히려 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독전을 볼 때 참고하면 좋은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이선생의 정체를 맞히려 하기보다, 각 인물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에 집중하면 더 재미있습니다.
  • 진하림 캐릭터가 등장하는 장면은 특히 집중해서 보시길 권합니다. 표정 하나하나가 다 계산된 연기입니다.
  • 결말까지 본 후 처음 장면을 다시 떠올려 보면 복선이 보입니다.

참고로 한국 영화진흥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독전은 2018년 개봉 당시 누적 관객 수 321만 명을 기록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범죄 장르 영화 치고는 높은 수치인데, 이 숫자가 배우들의 연기력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실제로 국내 범죄 스릴러 장르의 흥행 분석을 보면, 캐릭터의 존재감이 흥행에 미치는 영향이 스토리 완성도보다 높은 경우가 많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독전은 완벽한 영화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도 인물들의 장면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면, 그 영화는 뭔가를 제대로 한 겁니다. 스토리의 빈칸이 아쉬운 분이라면 아쉬운 대로 기억에 남고, 배우의 연기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어치를 하는 영화입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한 번 직접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1YAwZ5CWXC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