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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을 쓰다가 잡혀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940년대, 조선어 사용이 법으로 금지되던 그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영화 <말모이>를 처음 봤을 때 저도 모르게 손이 멈췄습니다. 총 한 자루 없이 사전 원고 한 묶음을 목숨처럼 품고 달리던 장면 때문이었습니다.

    말모이 포스터
    말모이 포스터

    민족말살정책, 말을 빼앗는다는 것의 무게

    1930년대에서 40년대는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 절정에 달한 시기입니다. 민족말살정책이란 일제가 조선 민족의 정체성 자체를 지우기 위해 언어·이름·문화를 조직적으로 억압한 통치 방식을 가리킵니다. 단순한 탄압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지우려는 시도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짚어보면, 그 범위가 상당히 넓습니다.

    • 내선일체(內鮮一體): "일본과 조선은 본래 하나의 나라"라는 논리로 동화를 강요한 이념
    • 창씨개명(創氏改名): 1940년부터 조선식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강제한 제도. 거부하면 입학·취직은 물론 대중교통 이용까지 막혔습니다
    • 조선어 사용 금지: 학교에서 조선말을 쓰다 걸리면 처벌을 받았고, 조선어 교육 자체가 폐지되었습니다
    • 황국신민(皇國臣民) 서사 암송 강요: 천황의 백성으로서 충성을 맹세하는 선서를 일상적으로 강요했습니다

    저의 할머니께서도 어릴 적 학교에서 조선말을 쓰다 혼이 났다는 말씀을 가끔 하셨습니다. 그때는 그냥 옛날이야기려니 했는데, 영화를 보고 난 뒤에야 그 한마디가 얼마나 무거운 현실이었는지 실감이 됐습니다. 단어 하나가 처벌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이제는 단순한 역사 지식이 아니라 실제 공포로 느껴졌습니다.

    요약: 민족말살정책은 언어와 이름, 문화 전반을 억압하며 조선인의 정체성 자체를 지우려 한 체계적 통치였습니다.

     

    조선어학회, 글자를 지키는 사람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조선어학회는 실제로 존재했던 단체입니다. 우리말을 가르쳤던 주시경 선생의 제자들이 설립한 학술 단체로, 표준어를 정리하고 전국의 사투리를 수집하며 우리말 사전 편찬을 목표로 활동했습니다. 주시경 선생은 이미 1911년에 우리말 사전 '말모이'의 편찬을 시작했으나 1914년 세상을 떠나며 완성하지 못했고, 그 뜻을 제자들이 이어받은 것입니다.

    조선어학회가 발행한 학술지 '한글'은 단순한 잡지가 아니었습니다. 한글 연구와 보급을 목적으로 만든 학술지로, 표준어 사정안(査定案)을 발표하고 언어 규범의 기준점을 세우는 역할을 했습니다. 여기서 표준어 사정안이란 각 지역마다 다르게 쓰이던 말 중에서 어느 것을 기준으로 삼을지 공식적으로 정리한 규범을 뜻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히 사용하는 맞춤법과 표준어의 뿌리가 바로 이 작업들에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전국 각지의 사투리를 모으기 위해 마지막 잡지에 광고를 싣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는 그 장면이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총독부의 눈길을 피하면서도 사투리 제보를 모으기 위해 광고 한 칸을 활용하는 그 치밀함이 단순한 영화적 설정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라는 사실이 더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국립국어원의 기록에 따르면 조선어학회는 이러한 노력 끝에 약 16만 어휘를 수집하는 성과를 이뤘습니다(출처: 국립국어원).

    요약: 조선어학회는 표준어 사정, 사투리 수집, 학술지 발행을 통해 우리말 사전 편찬의 기반을 실질적으로 쌓아 올린 단체입니다.

     

    우리말사전의 완성, 조선어학회 사건과 그 이후

    영화의 후반부를 이끄는 사건이 바로 조선어학회 사건입니다. 1942년, 한 여학생이 기차 안에서 조선말을 쓰다 경찰에 붙잡혔고, 조사 과정에서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 작업이 드러나게 됩니다. 일제는 이를 내란죄로 몰아 전국의 회원들을 긴급 체포했습니다. 내란죄란 국가 체제를 전복하려는 반역 행위에 적용되는 중죄로, 언어 연구 단체에 이 혐의를 씌운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가혹한 탄압이었는지 보여줍니다. 이윤재 선생을 비롯한 여러 회원이 혹독한 고문 끝에 옥중에서 순국했습니다.

    그렇게 압수된 원고와 자료들이 광복 이후 경성역 창고에서 기적처럼 발견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기도 한 이 발견은 실제 역사에 근거한 이야기입니다. 이후 우리말 큰사전은 1947년부터 분권 발행이 시작되었으나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중단되었고, 전쟁이 끝난 뒤 재개되어 1957년 마침내 총 6권으로 완성됩니다(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저는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사전 한 권이 완성되는 데 수십 년이 걸렸고, 그사이에 목숨을 잃은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저는 스마트폰 검색창에 단어 하나를 치면 즉시 뜻을 확인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 당연함의 뒤에 이 모든 역사가 쌓여 있다는 것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실감이 됐습니다.

    요약: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회원들이 체포·순국했지만, 광복 후 원고가 발견되어 1957년 우리말 큰사전이 마침내 6권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영화가 남긴 질문, 지금 우리는 어떻게 쓰고 있는가

    영화에서 가장 깊이 남은 대사는 "민족의 말은 정신이고, 민족의 글은 생명이다"라는 문장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다소 선언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영화 전체를 보고 나면 이 말이 얼마나 구체적인 현실에서 나온 문장인지 이해하게 됩니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한 집단의 역사와 사고방식, 세계관이 응축된 체계이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독립운동 소재 영화라고 해서 거대한 투쟁이나 전투 장면을 기대했는데, 이 영화의 긴장감은 전혀 다른 곳에서 왔습니다. 사투리 한마디를 기록지에 옮겨 적는 장면, 원고 꾸러미를 품에 안고 검문을 통과하려는 장면. 폭발이나 총격 없이도 손에 땀이 쥐어지는 이유는 그것이 언어라는 보이지 않는 무기를 다루는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제 경험상 이 영화가 아쉬운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주인공 판수가 돈 때문에 조선어학회에 들어왔다가 점차 우리말의 가치를 깨달아가는 변화가 이 영화의 핵심 서사인데, 그 전환이 조금 빠르게 처리된 느낌이 있습니다. 판수가 어느 순간 갑자기 달라진 것 같아서 그 감정의 흐름을 충분히 따라가기가 어려웠습니다. 조금 더 세밀한 장면들이 있었다면 마지막 희생 장면의 무게가 배가 됐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 자체는 매우 선명했고, 그것으로 충분히 마음에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요약: 말모이는 총이 아닌 언어로 싸운 독립운동의 이야기이며, 일부 서사 전개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말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말모이는 실화인가요?

    A.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조선어학회와 우리말 큰사전 편찬 과정, 1942년에 발생한 조선어학회 사건은 모두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다만 주인공 김판수와 류정환 등 주요 인물들은 실존 인물이 아닌 창작 캐릭터로, 실화의 흐름 위에 허구의 이야기를 얹은 형태입니다.

     

    Q. 창씨개명을 거부하면 실제로 어떤 불이익이 있었나요?

    A. 1940년 일제가 시행한 창씨개명 제도를 거부하면 자녀의 학교 입학이 금지되었고, 취직이 막혔으며 심지어 대중교통 이용까지 제한되었습니다. 행정 서비스 전반에서 불이익이 가해졌기 때문에 사실상 강제에 가까운 제도였습니다. 이름을 바꾸지 않으면 일상생활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설계된 압박이었습니다.

     

    Q. 우리말 큰사전은 언제 완성되었나요?

    A. 1947년 분권 발행이 시작되었으나 1950년 한국전쟁으로 중단되었고, 이후 다시 재개되어 1957년에 총 6권으로 최종 완성되었습니다. 주시경 선생이 1911년 편찬을 시작한 것을 기산점으로 하면, 완성까지 약 46년이 걸린 셈입니다.

     

    Q. 말모이 영화는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2019년 개봉한 영화로, 현재는 주요 OTT 플랫폼 및 VOD 서비스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서비스 제공 여부는 플랫폼마다 다를 수 있으니 직접 검색해 확인하시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광복절이나 한글날 전후로 무료 공개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론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제가 직접 달라진 게 있습니다. 평소에는 맞춤법이나 표준어 표현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국어사전을 찾아보는 횟수가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됐습니다. 말 한마디를 기록하기 위해 누군가 전국을 다녔다는 사실이 머릿속에 박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모이는 총 없이 싸운 독립운동의 기록입니다. 오늘 우리가 한글을 자유롭게 읽고 쓰는 이 사실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 당연함이 어디서 왔는지 한 번쯤 따라가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 영화가 그 출발점으로 충분히 좋은 선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X6DBMXd7zZ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