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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을 많이 받은 영화가 반드시 가장 좋은 영화일까요? 솔직히 저도 미나리를 보기 전까지는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에 아카데미까지 거론되는 작품이니 기생충 같은 긴장감과 반전이 있을 거라고 당연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든 감정은 예상과는 꽤 달랐습니다. 이 영화는 거대한 사건 없이도 오래 남는 영화였고, 동시에 왜 이 작품이 이 시점에 이토록 주목받는지 곱씹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미나리 포스터
    미나리 포스터

    이민자 정서: 미국 영화인데 왜 이렇게 한국 냄새가 날까

    일반적으로 미나리를 한국계 미국인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소개하지만,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조금 달랐습니다. 배경은 분명 1980년대 아칸소 허허벌판이고, 대사도 대부분 한국어인데, 이 영화는 제가 알고 있는 미국 이민자 영화의 문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을 향해 달려가는 전형적인 성공 서사가 아니라, 꿈과 현실 사이에서 삐걱거리는 가족의 일상을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었습니다. 여기서 아메리칸 드림이란 미국에서 노력하면 누구든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적 믿음을 의미합니다. 이민자들이 미국을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이자, 동시에 가장 많은 이들을 지치게 만드는 이상이기도 합니다.

    제이콥 가족이 도착한 아칸소의 트레일러 하우스 장면은 제 경험상 꽤 익숙한 감각을 불러왔습니다. 부모님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던 시기, 형광등 불빛 아래서 들리던 어른들의 낮은 목소리,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아이는 설명할 수 없지만 그냥 아는 그 감각이요. 그 장면에서 저는 영화 속 데이빗의 시선이 되어 있었습니다.

    미국이 이민자의 나라를 자처하지만, 아시아계 이민자는 오랫동안 그 서사의 변두리에 있었습니다.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정립한 이 개념은 서구가 동양을 신비롭고 이국적인 타자로 규정하며 바라보는 시선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아시아를 구경하는 대상으로만 봤다는 겁니다. 미나리는 그 시선을 정면으로 거부합니다. 한국 이민자 가족이 그냥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거든요. 구경거리가 아니라 이웃으로서요.

    • 병아리 감별사(chick sexer)라는 직업을 통해 당시 미국 내 아시아계 이민자의 노동 현실을 구체적으로 드러냄
    • 캘리포니아에서 아칸소로의 이주는 중심부에서 밀려난 이민자 가족의 현실을 지리적으로 표현한 장치
    • 교회의 백인 공동체와 공장의 아시아계 노동자라는 대비가 당시 미국 사회구조를 자연스럽게 담아냄
    요약: 미나리는 오리엔탈리즘의 시선을 거부하고, 아시아 이민자 가족의 일상을 구경거리가 아닌 보편적 삶으로 그려낸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작품 완성도: 감동적이라는 것과 걸작이라는 것은 다른 말이다

    미나리가 대단한 수작이라는 의견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봤습니다. 감동적이었냐고 물으면 분명히 그렇다고 답하겠습니다. 그런데 기생충이나 버닝과 같은 선상에 두기엔 서사 밀도(narrative density)가 다릅니다. 서사 밀도란 이야기 안에 의미 있는 사건과 인물의 변화가 얼마나 촘촘하게 배치되어 있는지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이 영화는 일부러 그 밀도를 낮게 가져갔고, 그게 이 영화의 의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선택이 모든 관객에게 동일하게 설득력 있게 다가오진 않을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아쉬웠던 지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모니카의 서사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가족을 둘러싼 갈등의 해소 방식이 다소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점이었습니다. 초반에 섬세하게 쌓아올린 캐릭터들의 긴장감이 후반에서 충분히 폭발하지 못한 느낌이었달까요. 순자의 병과 데이빗의 심장 회복이 감정적으로 연결되는 지점도 조금 더 정밀하게 맞물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해외 영화제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것은 작품성과 함께 시대적 맥락도 작동했다고 봐야 합니다.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는 2020년 다양성 확대를 위한 기준 개정을 발표하며 포용성과 대표성을 주요 심사 가치로 명시했습니다(출처: 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 이런 흐름 속에서 미나리가 받은 조명에는 작품 자체의 힘만이 아니라, 오랫동안 미국 영화 안에서 제대로 대표되지 못했던 아시아계 서사에 대한 업계의 뒤늦은 반응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의 진짜 장점은 오히려 그 담백함에 있습니다. 남매의 여름밤처럼 일상의 질감으로만 이야기를 끌어가면서도 개인의 경험을 넘어서는 공감을 만들어냅니다. 회초리를 가져오라는 제이콥의 말에 풀 한 줌을 들고 돌아오는 데이빗의 장면처럼, 설명 없이도 전달되는 정서가 이 영화의 가장 큰 무기입니다.

    요약: 미나리는 감동적이지만 서사 밀도 면에서 한계가 있으며, 높은 평가에는 작품성과 함께 시대적 맥락이 함께 작용했습니다.

    윤여정 연기: 아카데미가 발견한 것, 한국 관객이 이미 알던 것

    윤여정의 연기가 특별하다는 의견은 분명히 맞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르게 봐야 합니다. 한국 관객에게 윤여정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증명된 배우입니다.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것은 그녀의 커리어에서 하나의 사건이지만, 그게 그녀의 연기 수준을 새롭게 증명한 사건은 아닙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미국이 윤여정을 이제야 발견했다는 사실 자체가요.

    순자 캐릭터를 보면서 저는 고개를 몇 번 끄덕였습니다. 손주가 소변을 먹이는 장면에서 눈 하나 깜짝 않는 태연함, 욕설을 입에 달고 살지만 그 안에 손자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모순적인 인물. 이건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볼 수 있는 한국 할머니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윤여정의 연기가 과장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느껴졌던 겁니다. 미국 관객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 유형이었겠지만, 저에게는 정겨운 낯익음이었습니다.

    스티븐 연의 연기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계 배우로, 이 영화에서 대부분의 대사를 한국어로 소화해야 했습니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감정 연기를 한다는 건 굉장한 압박입니다. 인터뷰에서 그가 한국어 연기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밝힌 것도 이해가 됩니다. 그럼에도 제가 보기엔 완성도가 높았습니다. 특히 회초리 장면과 제이콥이 쓸모 있는 수컷이 돼야 한다고 말하는 장면은 한국적 부성(父性)의 핵심을 정확하게 잡아냈습니다. 부성이란 아버지로서 가족을 지키고 책임져야 한다는 역할 의식을 뜻하는데, 제이콥이라는 인물 전체가 바로 이 개념으로 구동됩니다.

    미국배우조합(SAG-AFTRA)이 발표한 다양성 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아계 배우는 미국 영화와 TV에서 여전히 인구 비율 대비 과소 대표되고 있습니다(출처: SAG-AFTRA). 윤여정의 수상 여부와 별개로, 미나리가 아시아계 배우들에게 실질적인 서사의 중심을 돌려줬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 윤여정: 한국 관객에게 이미 검증된 연기력이지만, 미국 관객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충격으로 작용
    • 스티븐 연: 모국어가 아닌 한국어로 부성이라는 무거운 정서를 설득력 있게 구현
    • 한예리: 후반부 서사가 축소되었음에도 모니카라는 인물에 감정적 무게를 유지한 섬세한 내면 연기
    요약: 미나리의 연기진은 전원 인상적이지만, 윤여정의 연기는 한국 관객에겐 익숙한 탁월함이고 미국 관객에겐 새로운 발견이라는 점에서 반응의 온도 차이가 생깁니다.

    미나리는 10점 만점에 7점짜리 영화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완벽한 작품은 아니지만, 보고 나서 자기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힘이 있는 영화입니다. 미나리가 어디서나 잘 자라는 식물이듯, 이 영화가 담은 정서도 어디서 보든 뿌리를 내립니다. 아칸소의 허허벌판이 낯설어도, 트레일러 집이 낯설어도, 제이콥 가족의 버팀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그게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미나리를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거대한 사건을 기대하지 말고 보시길 권합니다. 그 담백함이 오히려 오래갑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AWeFSi7cSX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