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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윤동주의 시를 줄줄 외우면서도 그게 얼마나 무거운 말인지 몰랐습니다. 영화 <동주>를 보고 나서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이라는 문장이 시험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의 필사적인 다짐이었다는 게 비로소 느껴졌습니다. 위대한 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열등감과 흔들림을 안고도 끝까지 자기 자리를 지킨 청년의 이야기로 다시 읽혔습니다.

창씨개명과 유학, 1943년의 선택이라는 벽
영화를 보면서 제가 처음 멈칫했던 장면은 윤동주와 송몽규가 일본 유학을 위해 창씨개명을 해야 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창씨개명이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1940년부터 조선인에게 일본식 성명을 강제로 채택하게 한 동화 정책입니다. 쉽게 말해 자기 이름을 버려야만 배움의 기회가 주어지는 구조였습니다. 윤동주는 히라노 도주라는 이름으로 교토 도시샤 대학에 입학하게 됩니다.
이 장면에서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독립운동가 하면 으레 총을 들거나 거리로 나가는 이미지를 떠올렸는데, 이름을 바꿔서라도 공부를 이어가겠다는 선택 자체가 얼마나 복잡한 감정의 덩어리인지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 영화 속 윤동주 스스로도 "그렇게까지 해서 유학을 간다는 게 왠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고 말합니다. 부끄러움을 안고도 선택을 밀어붙여야 했던 이유, 그게 이 영화의 첫 번째 층위입니다.
실제 역사적으로도 일제의 문화 통치 이후 이상화, 김소월, 이육사 같은 시인들이 작품을 남겼지만, 말기로 갈수록 일본이 특정 주제만 쓰도록 강요하는 시기가 도래합니다. 이 시기 조선인 지식인들에게 선택지는 매우 좁았습니다. 침묵하거나, 순응하거나, 아니면 아주 다른 방식으로 버티거나. 윤동주는 세 번째 길을 택한 사람이었습니다.
- 창씨개명(일본식 성명 강제 채택)은 1940년 조선총독부 시행, 조선인 정체성을 제도적으로 지우는 동화 정책이었습니다.
- 윤동주는 히라노 도주라는 이름으로 도시샤 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했으며, 사촌 송몽규는 교토 제국 대학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 두 사람은 1943년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 투옥됩니다(출처: 국립중앙도서관 한국 근현대사 자료).
열등감과 문학, 윤동주가 시를 쓴 진짜 이유
제 경험상 이 부분이 영화에서 가장 솔직한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윤동주는 송몽규 옆에서 늘 한 걸음 뒤에 있는 사람처럼 그려집니다. 송몽규는 연설로 사람을 사로잡고, 거리로 나가 독립을 외칩니다. 반면 윤동주는 글을 쓰고, 지우고, 다시 씁니다. 주변에 늘 앞서 나가는 친구가 있으면 나도 모르게 비교되고 작아지는 순간이 있는데, 영화는 바로 그 감각을 정직하게 담아냈습니다.
열등감(劣等感)이란 타인과의 비교에서 비롯되는 자기 비하와 무력감을 뜻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 감각이 창작 동기와 긴밀하게 연결된다고 봅니다. 윤동주의 경우 이 열등감이 시를 포기하는 방향이 아니라, 더 깊이 파고드는 방향으로 작동했습니다. 출판되지 않더라도 수백 번 고쳐 쓰고, 그중 19편을 직접 필사해 친구에게 맡긴 사람입니다. "내가 언젠가는 출판을 해야지"라는 마음을 붙잡고 살았던 것입니다.
도시샤 대학에서 윤동주를 알아본 다카마쓰 교수는 어려운 형편의 학생들에게 쌀밥을 내주고 자신은 굶어서 돌아갔다고 전해집니다. 그 환경에서 윤동주는 문학에 다시 힘을 실었습니다. 제가 직접 자료를 찾아보니 윤동주가 남긴 시편들이 사후에 정지용 선생의 도움으로 세상에 알려졌다는 경위도 이 영화가 자세히 짚어냅니다(출처: 국가유산청 등록문화유산 자료). 생전엔 주인공이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가장 오래 남은 목소리가 된 사람입니다.
영화 속 두 사람의 대립 장면이 인상 깊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행동으로 싸우는 송몽규와 문학으로 버티는 윤동주, 어느 쪽이 옳다고 가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충돌이 있었기 때문에 윤동주가 끝까지 자기 방식을 의심하고, 다시 선택하는 과정이 가능했다고 봅니다. 저항 문학(抵抗文學)이란 억압적 정치 권력에 맞서 문학적 형식으로 저항하는 창작 행위를 가리키는데, 윤동주의 시는 직접적 선동이 아니라 내면의 부끄러움을 언어로 붙잡는 방식으로 그 역할을 해냈습니다.
저항의 방식, 조용한 싸움도 싸움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나는 내 시대 앞에서 어떤 방식으로 서 있는가?" 윤동주와 송몽규의 관계를 보면서 예전에는 직접 싸우는 사람만 용기 있다고 생각했다는 걸 솔직히 인정하게 됐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흑백 영상(monochrome cinematography)이란 색채를 배제하고 명암만으로 피사체를 표현하는 촬영 기법입니다. 처음엔 답답하다고 느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그 시대의 숨 막힘과 윤동주의 맑은 내면이 더 또렷하게 느껴졌습니다. 컬러가 없으니 배우의 표정, 손의 떨림, 시를 쓰는 속도가 고스란히 눈에 들어옵니다. 이준익 감독의 선택은 제작비 절감이 아니라 윤동주라는 인물 자체에 집중하기 위한 연출적 결단이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가장 오래 귀에 남은 장면은 형무소 안에서 윤동주가 창밖을 바라보며 '별 헤는 밤'을 읊조리는 부분이었습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카메라는 그를 가두고 있는 창살을 비추다가 서서히 하늘로 올라갑니다. 감옥 안과 하늘 바깥, 그 거리가 고스란히 그리움의 크기가 됩니다. 제가 이 장면을 다시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건 연출이 뛰어나서이기도 하지만, 그 그리움이 지금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기 때문입니다.
- 송몽규의 저항 방식: 조선인 유학생을 모아 일본의 패망과 조선 독립을 직접 외치는 행동 중심의 투쟁
- 윤동주의 저항 방식: 시를 통해 암흑 시대의 진실을 언어로 붙잡고, 부끄러움을 잃지 않으려 버티는 내면 중심의 저항
- 영화가 말하는 것: 두 방식 모두 독립 투쟁이었으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향한 같은 방향의 걸음이었습니다.
윤동주가 27세로 사망한 뒤 6개월 만에 일본이 패망하고 조선은 독립을 맞이합니다. 그가 살아서 그 날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생체 실험으로 쓰러진 그의 마지막이 더 오래 마음에 걸립니다. 서시(序詩)란 시집 맨 앞에 놓이는 도입부의 시를 가리키는데, 영화는 이 서시를 엔딩에 배치합니다. 시작을 알리는 시가 마지막에 흐르는 순간, 윤동주의 삶 전체가 비로소 시인으로서의 출발점이 되는 역설이 완성됩니다.
영화 동주를 추천할 때 저는 "윤동주 시인을 좋아하는 분"보다 "자기 방식이 맞는지 자꾸 의심하는 분"에게 먼저 권합니다. 시대가 달라도 앞서 나가는 누군가 옆에서 작아지는 감각, 내가 선택한 방식이 과연 의미 있는가 하는 물음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이 영화는 그 물음에 답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 윤동주라는 사람이 그 물음을 끝까지 안고 살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흑백으로 찍혔지만 그 안에 담긴 온도는 분명히 있습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가능하면 혼자 보시길 권합니다. 중간에 멈추고 싶어질 수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