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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사람이 처음부터 정의로웠다면, 그 이야기는 그렇게까지 가슴을 치지 않았을 겁니다. 영화 변호인은 2013년 개봉 당시 1,13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한국 영화 흥행 기록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손이 땀에 젖었고, 다 보고 나서도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단순히 슬퍼서가 아니라, 화가 나서였습니다.

부림사건, 이 이름을 아십니까
영화를 보기 전에 이 사건의 이름을 아는 분이 얼마나 될까요? 부림사건은 1981년 전두환 군부 정권 하에서 부산 지역 학생과 청년들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집단 기소된 사건입니다. 여기서 국가보안법이란 반국가 단체를 찬양하거나 이를 이롭게 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법률로, 군사 정권 시절에는 이 법이 정치적 반대 세력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습니다.
당시 피의자들이 읽었다는 이유로 불온서적으로 지목된 책들 중에는 역사란 무엇인가,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같은 작품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확인해 봤는데, 이 책들은 지금도 서점 어디에서나 살 수 있는, 심지어 대학 필독서로 추천되는 책들입니다. 서울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에서 권장 도서로 올랐던 책이 불온서적이라는 논리는 그 자체로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영화 속 송우석 변호사는 법정에서 조목조목 짚어냅니다.
사건의 실제 결말은 영화보다 훨씬 늦게 찾아왔습니다. 2009년 재심을 통해 헌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었고, 2014년에는 국가가 공식적으로 배상 판결을 받았습니다(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가해자가 책임을 졌느냐는 별개의 이야기지만, 적어도 억울함이 공식적으로 인정되기까지 3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다는 사실이 저는 여전히 마음에 걸립니다.
송우석이라는 인물, 왜 이렇게 와닿을까
이 영화의 핵심이 뭐냐고 누가 묻는다면, 저는 주저 없이 "성찰"이라고 답하겠습니다. 송우석은 처음부터 사회 정의를 외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가난한 집안을 책임지기 위해 사법시험에 도전하고, 합격 후에는 부동산 등기 전문 변호사로 돈을 모으는 데 집중하던 현실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그가 살던 아파트 벽에 직접 새긴 문구, "철 때 푹 이 하지 말자"는 그 간절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저도 예전에 직장에서 동료가 부당한 지적을 받는 상황을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옆에서 보면 그 동료가 전적으로 잘못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 제가 나섰다가 불편한 상황이 생길까 봐 그냥 넘어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침묵도 일종의 공모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송우석도 처음에는 그런 사람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진우가 고문당한 몸으로 끌려오는 장면을 마주한 순간, 그는 더 이상 외면하지 못합니다.
영화를 연출한 양우석 감독은 이 캐릭터의 변화를 두고 "성찰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익 계산 없이 "이건 아닌데"라고 느끼는 감각, 그 감각이 살아있는 사람이 결국 행동하게 된다는 것을 영화는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제가 직접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오래 생각한 것도 그 지점이었습니다. 나는 과연 그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할 사람인가.
국가보안법과 용공조작, 법정 안에서 벌어진 일
영화의 법정 장면은 단순한 드라마가 아닙니다. 여기서 짚어야 할 개념이 있는데, 바로 용공조작입니다. 용공조작이란 실제 반국가 활동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사 기관이 증거를 꾸미거나 고문으로 허위 자백을 받아내어 공산주의자로 낙인찍는 행위를 말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군사 정권 시기 이런 방식으로 처벌받은 사례가 다수 확인된 바 있습니다(출처: 국가인권위원회).
송우석은 이 재판을 처음에는 단순히 형량 협상으로 끝내려 했습니다. 하지만 읽어봤더니 불온서적이 아니었고, 보고 났더니 고문 피해자였고, 확인해봤더니 영장도 제대로 된 절차도 없었습니다. 그는 결국 무죄를 주장하기로 합니다. 법정 안에서 그가 펼치는 논리는 거창하지 않습니다.
그가 사용하는 핵심 논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해당 서적들은 서울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의 권장 도서로, 불온서적이라는 주장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 군의관이 취조 현장에 동원된 사실은 고문이 있었음을 반증한다
- 고문으로 받아낸 자백은 증거 능력이 없다
-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중에서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법정에서 외치는 장면은 단순한 감동 코드가 아닙니다. 헌법 제1조란 국가의 존재 이유와 권력의 정당성을 규정하는 최상위 조문으로, 국가가 국민을 탄압하는 도구로 전락했을 때 가장 먼저 소환해야 할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그 대사가 지금도 귓가에 남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이 영화가 지금도 유효한 이유
바위는 아무리 강해도 죽은 것이고, 달걀은 아무리 약해도 생명을 품고 있다는 영화 속 대사를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너무 직접적인 비유라서 오히려 가슴에 더 꽂혔습니다. 권력의 부당한 사용과 그에 맞선 개인의 저항이라는 구도는 시대를 가리지 않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개봉된 2013년 이후, 부림사건의 피해자들은 30년이 넘는 세월 끝에 법적으로 명예를 회복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나 제도적 책임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 지점이 영화가 단순한 역사 재현에 머물지 않고 지금도 계속 이야기할 거리를 남기는 이유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정의라는 것이 처음부터 거창한 신념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이건 아닌데"라고 느끼는 순간에서 출발한다는 걸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그냥 한번 보시길 권합니다. 다 보고 나서 어떤 장면이 가장 오래 남는지, 그 장면이 왜 남는지 한번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그 생각이 어디로 이어지는지가 아마 이 영화가 묻고 싶었던 질문일 겁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관람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법률 조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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