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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증인의 증언이 법정에서 기각되는 순간, 문제는 증인의 기억력이 아니라 판단하는 사람의 이해 부족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예전에 자폐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말을 잘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아이의 말을 아무도 믿지 않아요." 그 한 마디가 이 장면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증인 포스터
    증인 포스터

    편견이 진실보다 먼저 판단을 내린다

    일반적으로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 Autism Spectrum Disorder)를 가진 사람은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증인으로서 신뢰하기 어렵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란 사회적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에 어려움을 겪는 신경발달 조건의 하나로, 그 특성과 정도가 사람마다 매우 다양합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여러 사례를 접해보니, 의사소통이 어렵다는 것과 기억이 부정확하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법정 장면에서 검사 측은 증인이 자폐라는 이유만으로 증언 자체의 신빙성을 공격했습니다. "자폐아의 경우 자신의 감정이나 기억을 정확히 전달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증인은 손수건의 물방울 개수를 196개로 정확히 세고, 법정 경비원이 속삭인 이름을 그대로 맞혔습니다. 편견이 진실보다 먼저 작동한 것입니다.

    제가 자폐 아이를 돌보는 학부모에게 들었던 이야기도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그분은 아이가 말을 더듬거나 엉뚱하게 반응한다는 이유로 선생님들조차 아이의 설명을 무시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처음에 저 역시 막연하게 "표현이 어려우면 기억도 불완전하지 않을까"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대화 이후로 그 생각이 얼마나 근거 없었는지를 천천히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기억력 결함이 아니라 의사소통 방식의 차이에 가깝습니다
    • 증언의 신뢰성은 말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달되는 내용으로 판단되어야 합니다
    • 편견은 증거를 보기 전에 판단을 내리고, 이후 증거를 그 판단에 끼워 맞춥니다
    요약: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의사소통 불능으로 등치시키는 편견이, 진실한 증언을 법정에서 스스로 걸러내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의사소통 방식이 다를 뿐, 정보는 정확했다

    이 장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증인이 "청각 기억의 이미지화"를 통해 사건 당일 들었던 발화를 108자 단위까지 정확히 재현해 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청각 기억의 이미지화란 들었던 소리를 음성 정보 그대로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처럼 머릿속에 고정된 이미지로 기록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텍스트 파일이 아니라 스크린샷으로 저장하는 셈입니다.

    실제로 일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에게서 나타나는 감각 과민(Sensory Hypersensitivity) 특성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감각 과민이란 일반인보다 청각·시각·촉각 등 특정 감각이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상태를 말하는데, 이 특성이 특정 상황에서는 오히려 매우 정밀한 정보 수집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출처: NIH PubMed, 자폐 스펙트럼의 감각 처리 연구

    제 경험상, 표현이 느리거나 직접적이지 않은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는 경우가 주변에서도 꽤 많았습니다. 회사에서도 발표를 유창하게 하는 사람이 신뢰를 먼저 얻고, 말이 느리거나 조용한 사람은 능력 자체가 낮게 평가받는 장면을 반복해서 목격했습니다. 저 역시 한동안 그 분위기에 적응해 살았다는 걸 나중에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상대방이 말을 더듬거나 표현이 서툴러도 끝까지 기다리는 습관을 의식적으로 들이려 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말의 속도나 유창함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정보의 정확성이라는 사실을 이 장면이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요약: 청각 기억의 이미지화와 감각 과민이라는 특성이 오히려 정밀한 정보 전달을 가능하게 했으며, 문제는 증인이 아니라 그 방식을 이해하려 하지 않은 법정의 태도였습니다.

    증언 신뢰성의 기준, 누가 정하는가

    법정에서 증언 신뢰성(Testimonial Credibility)이란 증인의 진술이 사실에 부합하는 정도를 평가하는 개념입니다. 일반적으로 이 평가는 진술의 일관성, 기억의 구체성, 진술 당시의 태도 등을 기준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이 기준 자체가 신경전형인(Neurotypical), 즉 비자폐 다수를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 이 장면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실제로 영국의 자폐 권리 단체 Autism Europe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이 법적 절차에서 부당하게 불리한 위치에 놓이는 사례를 반복적으로 보고해 왔습니다. 이들은 면접이나 심문 방식 자체가 비자폐인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자폐인의 정확한 기억이 오히려 '비정상적'으로 해석되는 역설이 발생한다고 지적합니다. 출처: Autism Europe

    이 장면에서 변호사가 한 말이 그래서 더 울림이 컸습니다. "문제는 지우가 소통하는 방법을 우리가 몰랐던 것,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의 대사였습니다. 보통 법정 드라마에서 장애를 가진 증인이 나오면 그 능력을 '증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데, 여기서는 이해하지 않으려 한 쪽의 책임을 정면으로 짚었기 때문입니다.

    증언 신뢰성의 기준을 다수의 방식에만 맞춰두면, 소수의 정확한 진술은 영원히 의심받는 구조가 됩니다. 기준 자체를 다시 물어야 한다는 것, 이 장면이 가장 강하게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요약: 증언 신뢰성의 평가 기준이 신경전형인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는 한,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는 사람의 정확한 진술은 구조적으로 배제될 수밖에 없습니다.

    감동 코드 뒤에 숨은 또 다른 고정관념

    이 작품이 잘 만든 부분은 분명합니다. 장애를 극복하는 감동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사회가 만든 편견이 얼마나 구체적인 장벽이 되는지를 법정이라는 공간을 통해 보여줬습니다. 그 메시지는 충분히 유효하고, 제가 보기에도 설득력 있게 전달되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런 장면에서 한 가지를 더 짚어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현실의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이 모두 이 증인처럼 물방울 개수를 세거나 수백 자의 발화를 재현하는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이런 특출한 기억력이나 능력은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이라고 불리는 경우에 해당하는데, 서번트 증후군이란 특정 영역에서 극도로 뛰어난 능력이 나타나는 현상으로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전체의 약 10% 미만에서만 관찰됩니다.

    "자폐인은 모두 천재적인 능력이 있다"는 시선도 또 다른 고정관념입니다. 그 시선은 특별한 재능이 없는 자폐인을 오히려 설명하기 어렵게 만들고, 지원의 필요성을 흐릿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이 장면의 핵심이 거기 있지 않습니다. 핵심은 능력의 크기가 아니라, 사람마다 다른 소통 방식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장면을 볼 때 "저 아이는 특별하니까"가 아니라 "저 아이의 방식을 이해하려 했더니"라는 시각으로 읽는 것이 훨씬 더 정직한 독해라고 봅니다. 그 차이가 생각보다 크고, 그 차이가 결국 현실에서의 태도를 바꿉니다.

    • 서번트 증후군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전체가 아닌 일부에서만 나타나는 특성입니다
    • '장애인도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서사는 능력 없는 장애인을 오히려 배제하는 역설을 만들 수 있습니다
    • 이 장면의 진짜 메시지는 능력의 증명이 아니라 소통 방식의 다양성에 대한 존중입니다
    요약: 감동적인 연출 이면에 또 다른 고정관념이 자리할 수 있으며, 이 장면의 진짜 가치는 능력이 아니라 이해의 방향을 바꾸는 데 있습니다.

    이 법정 장면이 남긴 질문은 하나로 모입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방식으로 들으려 한 적이 있는가. 말이 느리거나 표현이 낯설다는 이유로 판단을 먼저 끝내버린 적은 없었는가. 저도 돌아보면 그런 순간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장면이 불편하면서도 오래 남았습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나 의사소통 방식의 다양성에 관심이 생겼다면, 실제 당사자와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자료를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드라마 속 연출보다 훨씬 복잡하고, 훨씬 더 현실적인 이야기가 거기 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8FJvkCu4EZ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