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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에 혼자 골목길을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영화 추격자를 보고 나서 한동안 그랬습니다. 단순히 무서워서가 아니라, 저 앞에 걸어가는 사람이 뉴스에서 봤던 그 얼굴과 겹쳐 보이는 느낌이 들어서였습니다. 2008년 개봉한 나홍진 감독의 데뷔작 추격자는 그런 영화입니다. 오래 지나도 선명하게 남는 공포가 있습니다.

    영화 추격자 포스터
    영화 추격자 포스터

    범죄 실화를 닮은 서사구조, 어디서 왔나

    추격자가 개봉 당시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유 중 하나는 실화를 기반으로 한 서사 구조 때문입니다. 영화는 2003년부터 2004년 사이 서울에서 발생한 연쇄 살인 사건, 이른바 유영철 사건에서 모티프를 가져왔습니다. 실제로 피해자 다수가 유흥업소 종사자였고, 범인이 피해자를 주거지로 유인하는 방식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영화와 구조가 겹칩니다.

    저는 처음 이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 그냥 픽션인 줄 알고 봤는데, 뒤를 찾아보니 현실과 이렇게 가깝다는 걸 알게 된 것입니다. 영화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영화의 서사 구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인 메디아스 레스(in medias res) 방식입니다. 여기서 인 메디아스 레스란 사건의 처음부터 순서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건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서술 기법을 뜻합니다. 관객은 지영민이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해쳤는지를 서서히 알아가면서 공포가 누적됩니다. 범인을 처음부터 드러내놓고 시작하는 방식 역시 이 기법의 변형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보통의 스릴러 영화는 범인 찾기가 핵심인데, 추격자는 범인이 누구인지를 일찌감치 보여준 뒤 오히려 "그래서 막을 수 있는가"라는 다른 질문으로 긴장감을 끌어올립니다. 제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이미 다 보여줬는데 왜 이렇게 긴장되지?"라고 생각했던 것도 바로 이 구조 덕분이었습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추격자는 개봉 첫 주부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고 최종 누적 관객 수 약 500만 명을 기록했습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나홍진 감독의 데뷔작이 이런 성과를 낸 건, 단순히 자극적인 소재 때문이 아니라 구조 자체가 탄탄했기 때문입니다.

    지영민이라는 인물, 왜 더 무서운가

    영화에서 살인마 지영민을 연기한 하정우는 이 작품으로 이름을 완전히 알렸습니다. 그런데 제가 친구들과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마다 공통적으로 나오는 말이 있었습니다. "너무 평범하게 생겨서 더 무섭다"는 것입니다.

    이 지점이 바로 영화의 핵심을 건드립니다. 지영민은 사이코패스(psychopath) 캐릭터의 전형에서 벗어난 인물입니다. 여기서 사이코패스란 반사회적 성격장애의 일종으로,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 결여와 충동 조절 문제를 특징으로 하는 임상적 개념입니다. 일반적인 영화 속 악당은 과장된 표정과 거창한 동기가 있는 경우가 많지만, 지영민은 오히려 무표정하고 심드렁하게 범행을 저지릅니다. 자신이 한 일을 경찰 앞에서 낄낄거리며 시인하는 장면은, 저도 처음 봤을 때 등골이 오싹할 정도였습니다.

    이 캐릭터가 무서운 이유를 분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범행 동기가 납득하기 어려울 만큼 단순하거나 부재한다
    • 외모와 태도가 평범해서 사전에 식별이 불가능하다
    • 자신의 행위에 대한 죄책감이나 두려움이 전혀 없다
    • 심문 상황에서도 심리적 동요 없이 상대를 역으로 관찰한다

    이 중에서 저는 네 번째가 가장 소름 돋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로파일러가 영민의 약점을 파고들려 하지만, 결국 영민이 그 상황 자체를 즐기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포렌식 심리학(forensic psychology) 연구에서는 이런 유형의 범죄자를 조직형 범죄자(organized offender)로 분류합니다. 조직형 범죄자란 범행을 사전에 계획하고 증거를 은폐하는 등 체계적인 행동 패턴을 보이는 유형을 말합니다. 지영민이 피해자를 자신의 집으로 유인하고, 경찰에 잡혀서도 엉뚱한 위치를 알려주며 시간을 버는 장면은 이 개념과 맞닿아 있습니다.

    시스템 비판, 영화가 진짜 말하려는 것

    추격자를 단순한 범죄 스릴러로만 보면 절반밖에 못 본 겁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부분은 살인 장면이 아니라, 경찰이 범인을 잡아놓고도 놓아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영화는 시스템 실패(systemic failure)라는 개념을 전면에 배치합니다. 여기서 시스템 실패란 개인의 과실이 아니라 조직 구조 자체의 결함으로 인해 예방 가능한 피해가 발생하는 상황을 뜻합니다. 범인은 명백히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고 있었고, 결정적인 자백에 가까운 발언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물리적 증거가 확보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석방됩니다. 그리고 그 사이 또 다른 피해자가 생깁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를 처음 보면서 "이 정도면 잡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는데, 현실의 수사 절차가 실제로 이렇게 작동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단순히 극적 장치라고 넘기기가 어렵습니다. 대한민국 형사소송법상 긴급체포 후 구속영장 없이 구금할 수 있는 시간에는 법적 제한이 있으며, 증거 없이 무제한 구금은 불가능합니다. 영화가 과장한 측면도 분명 있지만, 제도의 빈틈이 실제로 비극을 낳을 수 있다는 메시지는 허구가 아닙니다.

    경찰청 범죄 통계에 따르면 강력범죄 피의자의 구속영장 기각률은 매년 일정 비율로 존재하며, 증거 불충분이 주요 사유 중 하나로 꾸준히 지목됩니다(출처: 경찰청). 물론 이는 무고한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 추격자는 바로 그 틈에서 비극이 발생할 수 있음을 정면으로 보여줍니다.

    다만, 저는 영화 후반부 경찰 조직 전체가 지나치게 무능하게 그려지는 부분은 약간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극적 긴장감을 극대화하기 위한 연출로 보이는데, 메시지를 강화하는 효과는 분명하지만 모든 장면이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막을 수 있었을까?"는 지금도 유효합니다.

    추격자를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잔인함보다 답답함에 훨씬 더 많이 시달릴 준비를 하고 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뒤에도 "조금만 달랐더라면"이라는 생각이 자꾸 맴돈다면, 그게 바로 이 영화가 의도한 감상일 겁니다. 단순히 무섭고 끝나는 영화가 아니라, 뭔가를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면 추격자는 그 기준을 충분히 넘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xuvDqEuakl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