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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처음 완득이를 봤을 때, 이게 이렇게 오래 기억에 남을 영화일 줄은 몰랐습니다. 웃기고 가볍게 시작하는 것 같은데, 보고 나면 가슴 어딘가가 묘하게 무거웠습니다. 다문화 가정, 장애, 빈곤, 사회적 소외라는 묵직한 키워드들이 담겨 있는데도, 영화가 끝날 때까지 숨 막히지 않았습니다. 그게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완득이 사진
    완득이 사진

    다문화 가정이 그려지는 방식, 무엇이 달랐나

    제가 직접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 이 집 가족 구성이 정말 복잡하다"였습니다. 왜소증을 가진 아버지, 카바레 댄서 출신의 전직 공연자, 정신지체 장애를 가진 민구 삼촌, 그리고 베트남 출신 어머니까지. 일반적으로 다문화 가정(Multicultural Family)을 다룬 콘텐츠는 그 가족을 도움이 필요한 대상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기서 다문화 가정이란 국적, 인종, 문화적 배경이 다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가 포함된 가정을 뜻합니다.

    완득이는 그 공식을 따르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카바레가 문을 닫은 뒤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어머니는 이주민들에게 요리를 가르치며 자신의 역할을 찾아갑니다. 불쌍한 가족이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로 그려진다는 점이 제 눈에는 꽤 중요하게 느껴졌습니다.

    2021년 여성가족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다문화 가구 수는 약 36만 가구에 달합니다(출처: 여성가족부). 이 숫자가 꽤 크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 주변에서 다문화 가족의 실제 이야기를 가까이서 들을 기회는 여전히 많지 않습니다. 완득이가 그 간극을 조금이라도 메워주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성장 서사라는 틀, 그 안에서 복싱이 하는 일

    완득이가 킥복싱을 시작하는 장면은 단순히 "주인공이 꿈을 찾았다"는 설정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처음에 완득이는 싸움의 연장선으로 복싱을 바라봤습니다. 관장도 처음에는 마음에 들지 않았죠. 그런데 그 과정이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고 해서 모든 게 바로 순탄하게 풀리는 건 아니니까요.

    성장 서사(Coming-of-Age Narrative)란 주인공이 외부 사건이나 인간관계를 통해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이야기 구조를 의미합니다. 완득이의 성장은 복싱 실력이 느는 것보다, 아버지와의 갈등을 마주하고 어머니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데서 더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제가 학창 시절을 돌아봤을 때, 주변에 겉으로는 거칠고 반항적으로 보였지만 사실 가정 환경이 복잡했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왜 저렇게 화가 많은지, 왜 사소한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완득이를 보면서 그 친구의 행동이 뒤늦게 이해됐습니다. 사람은 이유 없이 공격적이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이 쌓여서 그런 방식으로 나오는 겁니다.

    완득이가 아버지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내뱉는 장면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하고 싶은 거 다 하셨으면서"라는 말이죠. 저는 그 장면에서 숨이 잠깐 멎었습니다. 저도 비슷한 말을 부모님 앞에서 한 적이 있어서요. 그 말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동주 선생님, 오지랖인가 진심인가

    완득이는 옆집에 사는 담임 선생님 동주를 처음에 그냥 없애버리고 싶은 존재로 묘사합니다. 교회에서 "동주 죽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할 정도니까요. 저도 처음엔 그 장면에서 그냥 웃고 넘겼는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동주의 행동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동주는 완득이의 어머니 소식을 전해주고, 아버지의 편에 서주고, 형사들에게 끌려갈 때도 완득이 곁에 있었습니다. 이런 인물 유형을 영화 문법에서는 멘토-멘티 관계(Mentor-Mentee Relationship)라고 부릅니다. 멘토-멘티 관계란 경험이 많은 인물이 주인공의 성장을 옆에서 이끌어주는 구도를 뜻하며, 성장 서사에서 빠지지 않는 구조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관계는 실제로도 존재합니다. 저도 사회생활 초반에 유독 잔소리가 많아서 부담스러웠던 직장 선배가 있었습니다. 막상 몇 년이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 그분이 해줬던 말들이 꽤 정확했고 그 잔소리가 없었다면 제가 실수를 훨씬 많이 했을 겁니다. 동주가 완득이한테 그런 존재였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 가지는 짚고 싶습니다. 동주의 오지랖이 영화 안에서는 결국 옳은 것으로 귀결되는데, 현실에서는 그 경계가 훨씬 더 복잡합니다. 진심과 개입 사이에서 선을 어디에 그어야 하는지는 늘 어려운 문제입니다.

    사회적 소외 계층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

    완득이가 오래 기억되는 이유를 한 가지만 꼽으라면, 저는 소외 계층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하겠습니다. 다문화 가정, 장애인, 빈곤층이라는 사회적 소외(Social Exclusion) 집단을 영화는 불쌍하거나 특별한 존재로 그리지 않습니다. 사회적 소외란 경제적·문화적·신체적 이유로 주류 사회의 활동에서 배제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영화가 제작된 2011년 기준으로, 국내 장애인 인구는 약 251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5%를 차지했습니다(출처: 한국장애인개발원). 숫자로만 보면 적지 않은 비율인데, 영화나 드라마에서 장애인 캐릭터가 주변인물로 등장할 때 대개 짐이 되거나 구원받아야 할 대상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민구 삼촌은 그 틀을 벗어납니다. 아버지에게 춤을 배우며 자연스럽게 가족이 되고, 완득이 아버지를 진심으로 따릅니다. 그에게는 그 집이 가장 편안한 곳입니다.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사회생활에서 만났던 한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처음에는 말수가 없고 표정도 굳어서 가까워지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가족 문제와 경제적 어려움을 동시에 안고 있었습니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완득이는 그런 반성을 자연스럽게 불러일으키는 영화입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갈등 해소가 다소 빠르게 진행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가족 간의 상처와 오랜 오해가 실제 삶에서는 몇 년에 걸쳐서도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감동적인 결말이지만, 현실과 비교하면 조금은 이상적으로 마무리되었다는 생각도 지웁니다.

    완득이를 아직 보지 않은 분이라면 한 번쯤 꼭 보셨으면 합니다. 사회적 메시지를 무겁게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렇게 따뜻하게 담아낸 한국 영화가 많지 않습니다. 보고 나서 주변의 누군가 한 명이 떠오른다면, 그게 이 영화가 하려는 말이 전달된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z4T_LVSH1j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