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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강동원 배우의 능청스러운 연기와 도술 액션이 신기해서 끝까지 봤을 뿐이었죠. 그런데 다시 보니 이건 단순한 오락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최동훈 감독이 삼국유사와 한국 고전 「전우치전」을 뼈대로 삼아, 얼마나 촘촘하게 설정을 쌓아 올렸는지 뒤늦게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타짜와 범죄의 재구성을 만든 감독이 왜 굳이 도술 판타지를 선택했는지, 그 이유도 함께 풀어봅니다.

비하인드: 현장에서 만들어진 장면들
처음 영화를 볼 때는 몰랐는데, 알고 보면 이 영화는 현장 애드리브와 즉흥적인 선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화담의 특유한 헤어스타일은 감독과 배우 김윤석이 함께 술을 마시던 중, 김윤석 배우가 즉흥적으로 화장지에 선비 그림을 그린 것에서 나왔습니다. 기획 단계에서 치밀하게 설계된 게 아니라 그 순간의 감각으로 탄생한 이미지입니다.
현장 환경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한겨울 야외 세트에서는 기와가 얼어붙어 배우들이 서 있기조차 힘들었고, 기와 사이사이에 모래주머니로 발판을 만든 뒤 촬영 후 CG로 지워야 했습니다. 강동원 배우가 벽을 타는 장면은 12줄의 와이어를 몸에 감고 사방으로 당겨가며 촬영한 것인데, 이 중 뒷걸음질 치거나 다른 벽으로 옮겨가는 두 컷만으로도 준비부터 액션까지 대여섯 시간이 소요됐다고 합니다.
화담을 연기한 배우의 가죽 신발이 얼어서 접히다가 부러질 정도였다는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를 볼 때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 뒤에, 이런 혹한의 조건이 버티고 있었다는 걸 알고 나면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저도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편인데, 결과물의 완성도가 아니라 과정의 조건이 그 결과를 결정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걸 이 영화 비하인드를 보며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 화담 헤어스타일: 김윤석 배우가 즉흥적으로 그린 화장지 선비 그림에서 착안
- 와이어 액션: 강동원 배우가 대역 없이 12줄 와이어로 벽면 장면 소화
- 기와 발판: 얼어붙은 기와에 모래주머니 설치 후 CG로 제거
- 카체이싱: 노원·가산디지털단지·서초·부산 4개 도시, 9일간 촬영
- 천관대사 공간: 지상 8m 높이 야외 세트 촬영 후 CG 합성
성장플롯: 부적 없이 도술을 쓰게 되는 이유
이 영화를 단순한 코믹 액션으로만 보다가 어느 순간 멈칫했습니다. 전우치가 왜 처음에는 부적 없이 도술을 못 쓰다가 마지막에 쓸 수 있게 되는지, 그 변화가 단순한 능력 업그레이드가 아니라는 걸 뒤늦게 알아챘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구조는 사실 전형적인 성장플롯(growth plot)을 따릅니다. 성장플롯이란 주인공이 외부 목표를 쫓는 과정에서 내면의 변화를 겪으며 진짜 문제를 해결하게 되는 서사 구조를 의미합니다. 전우치는 청동거울과 청동검이라는 맥거핀(MacGuffin)을 쫓습니다. 맥거핀이란 이야기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말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는 소품이나 목표를 가리키는 영화 용어입니다. 감독 스스로도 청동검과 거울은 전우치와 초랭이에게만 중요할 뿐이라고 밝혔을 정도입니다.
저도 직장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감이 지나쳐 보이는 동료가 있었는데, 처음엔 말만 앞서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졌을 때 그 동료가 가장 먼저 나서서 수습하는 모습을 보고, 사람을 한 가지 모습으로만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전우치도 그런 인물입니다. 잘난 척하고 사고를 치는 도사처럼 보이지만, 스승의 죽음과 화담과의 대결을 거치며 책임을 배웁니다.
부적(符籍)은 도교 수련에서 자신의 의지와 집중력을 물리적인 형태로 외화(外化)한 도구입니다. 즉 부적이 없으면 도술을 못 쓴다는 건, 아직 내면의 힘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영화 후반 전우치가 부적 없이도 도술을 쓰게 되는 순간은 바로 그 내면의 통제를 얻은 순간입니다. 스승 천관대사의 유언인 "마음을 비워라"가 전우치를 살리는 설정도 그래서 설득력이 있습니다. 감독은 이 성장을 능력의 상승이 아니라 마음가짐의 변화로 설계했습니다.
최동훈: 한국 고전을 오락 영화로 만드는 방식
최동훈 감독은 「범죄의 재구성」과 「타짜」로 성인 관객을 사로잡은 뒤, 다음 작품은 전 세대가 즐길 수 있는 오락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전우치」입니다. 소재는 조선 시대 도술사 이야기인 고전 「전우치전」에서 가져왔고, 여기에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천부인(天符印) 설정을 덧붙였습니다. 천부인이란 환인이 아들 환웅에게 세상을 다스리게 하며 내렸다는 세 가지 신성한 도구로, 청동검·청동거울·청동방울이 이에 해당합니다. 영화 안의 세계관이 단순한 창작이 아니라 실제 고전 문헌을 뼈대로 삼고 있다는 뜻입니다(출처: 한국고전번역원).
감독이 설정한 도술 체계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영화 안에는 우도방(右道方)과 좌도방(左道方)이라는 두 세력이 등장합니다. 우도방은 올바른 도를 수련하는 세력이고, 좌도방은 그릇된 도와 환술을 쓰는 세력입니다. 이 구분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도교 수련법에서 실제로 따온 개념입니다. 전우치와 스승 천관대사는 우도방에 속하지만, 전우치가 부적을 쓰는 점은 본래 좌도방이 주로 사용하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영화 안 신선이 이를 두고 의아하게 여기는 대사도 있는데, 그냥 넘겼다가 이 설정을 알고 나서야 그 대사가 얼마나 세밀하게 설계된 것인지 실감했습니다.
감독은 또 플래시백(flashback)과 플래시 포워드(flash-forward) 기법을 즐겨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플래시백은 과거 장면을 현재 서사에 삽입하는 기법이고, 플래시 포워드는 미래 장면을 미리 보여주는 기법입니다. 「전우치」는 비교적 시간 순서에 충실하지만, 크게 보면 현재의 신선 시점에서 시작해 500년 전 과거로 넘어가는 방식을 취합니다. 감독이 거의 모든 작품에서 이 구조를 사용한다는 점을 알면, 단순해 보이는 인트로가 사실 꽤 계산된 선택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전우치」에서 이완용 암살 사건을 다룬 시나리오의 뼈대가 이 영화 안 촬영 현장 씬으로 녹아들었고, 그 시나리오에 살을 붙인 결과물이 「암살」(2015)이 된 것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암살」은 최종 1,270만 관객을 동원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저는 이 연결 고리를 알고 난 뒤 두 영화를 연달아 다시 봤는데, 최동훈 감독이 아이디어를 얼마나 오래 품고 있다가 꺼내는 사람인지 새삼 감탄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전우치 영화가 원작 소설과 많이 다른가요?
A. 영화에서 원작 「전우치전」을 그대로 따온 장면은 왕을 농락하고 족자 속으로 사라지는 대목 하나뿐입니다. 나머지는 최동훈 감독이 삼국유사와 도교 설정을 더해 새롭게 구성한 이야기입니다. 원작 팬이라면 차이가 크다고 느낄 수 있지만, 오히려 그 자유로운 재해석이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봅니다.
Q. 화담은 왜 악당인데도 공감이 가나요?
A. 화담은 단순히 세상을 지배하려는 악당이 아닙니다. 500년 이상을 늙지 않고 살아오면서 권태와 허무주의에 빠진 존재로 설계된 캐릭터입니다. 모티브는 조선 중기 유학자 화담 서경덕 선생이지만, 영화 안에서는 오랜 세월이 만들어낸 피로감을 가진 인물로 그려져 단순한 선악 구도를 벗어납니다.
Q. 청동검과 거울이 결말에서 별 역할을 못 하는 게 의도된 건가요?
A. 네, 의도된 설정입니다. 감독은 청동검과 거울을 맥거핀으로 활용했다고 밝혔습니다. 중요한 물건처럼 등장하지만 결말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는 장치로, 관객보다 전우치와 초랭이에게만 의미 있는 목표입니다. 처음 보면 허무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설정 덕분에 진짜 주제인 내면의 변화가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Q. 초랭이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A. 감독은 개 사람이라는 존재를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 시나리오가 잘 써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유해진 배우를 캐스팅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잡혔고 시나리오도 술술 써졌다고 하니, 초랭이는 사실상 유해진 배우를 위해 완성된 캐릭터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결론
「전우치」는 완벽하게 정돈된 판타지가 아닙니다. 설정이 워낙 많다 보니 처음 보는 관객은 청동검·거울·피리·신선·요괴의 관계를 한 번에 따라가기 어렵고, 서인경이라는 인물의 감정도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아쉬움은 오히려 두 번 볼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첫 번째 관람에서 놓쳤던 복선과 설정이 두 번째에는 보이기 시작하거든요.
약간의 허술함조차 전우치라는 인물의 자유분방함과 닮아 있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계산된 세계관보다 배우의 표정과 말맛, 현장의 에너지가 영화를 끌고 가는 작품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독특한 매력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최동훈 감독 특유의 빠른 대사 호흡과 한국 고전을 비틀어 쌓아 올린 세계관이 궁금하다면, 먼저 영화를 보고 비하인드를 찾아보는 순서를 권합니다. 순서를 바꾸면 첫 관람의 즐거움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