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시원한 활 액션 영화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병자호란(丙子胡亂)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 단순한 오락 영화로 치부하기엔 남기는 무게가 너무 달랐습니다. 700만 관객을 동원한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병자호란, 역사책 밖의 공포일반적으로 병자호란이라고 하면 1636년 청나라의 침입, 인조의 삼전도 굴욕, 이 두 가지 정도로 정리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학창 시절엔 그랬습니다. 연도 외우고, 결과 외우고. 그게 전부였죠.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달라졌습니다. 영화는 청나라 수십만 기마병이 국경을 넘는 순간부터 시작하는데, 그 진격 속도가 얼마나 압도적이었는지를 감각적으로 전달합니다. 실제로 당시 청 ..
솔직히 처음 극장에서 암살을 봤을 때는 그냥 여름 블록버스터쯤으로 생각했습니다.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가 한 화면에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유였으니까요. 그런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나서도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총격전이 아니라 시대의 무게 때문이었습니다.무단통치 시대가 배경인 이유, 그냥 선택이 아니다영화 암살은 1933년 경성을 배경으로 합니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이어진 일제강점기를 흔히 세 시기로 나누는데, 1기는 무단통치(1910~1919), 2기는 문화통치(1920년대), 3기는 민족말살통치(1930년대 이후)입니다. 여기서 민족말살통치란 일본이 조선의 언어·문화·이름까지 강제로 말소하려 한 시기로, 독립운동 탄압이 가장 극심했던 때를 말합니다.1933년이라는 설..
폐위된 왕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권력 쟁탈전이 아니라 밥상 한 끼에 집중한다면, 그게 과연 역사 영화로서 유효할까요? 처음 이 영화 소개를 접했을 때 저도 그 의문이 앞섰습니다. 그런데 마침 몇 년 전 영월 청령포를 직접 다녀온 기억이 겹치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강으로 막힌 그 공간이 얼마나 철저한 고립을 의미하는지 몸으로 알고 나니, 이 영화가 왜 밥을 이야기하는지 어렴풋이 이해가 됐습니다 팩션(faction)으로 읽어야 하는 역사적 배경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팩션(faction) 장르로 분류됩니다. 팩션이란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의 합성어로, 역사적 사실을 뼈대로 삼되 감독의 상상력으로 살을 붙이는 서사 방식입니다. 역사적 토대가 탄탄할수록 그 위에 쌓아 올린 픽션의 감정적 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