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영화라고 해서 사냥 액션을 기대하고 봤다가, 끝나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2015년 개봉한 영화 《대호》는 1917년 일제강점기 조선을 배경으로, 사냥꾼 만덕과 백두대간의 마지막 호랑이 산군이 맞닥뜨리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추격전처럼 보였지만, 저는 이 영화에서 끝까지 남는 건 액션이 아니라 자식을 잃은 부모의 감정이라는 걸 마지막 장면에서야 깨달았습니다.상실감 - 원수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을 때영화를 처음 볼 때 저는 이런 질문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호랑이도 슬픔을 느낄까?" 당연히 느끼겠지, 하면서도 사실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니 그 질문이 점점 무겁게 느껴졌습니다.산군은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로 일제강점기의 무분별한 해수구..
우리말을 쓰다가 잡혀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940년대, 조선어 사용이 법으로 금지되던 그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영화 를 처음 봤을 때 저도 모르게 손이 멈췄습니다. 총 한 자루 없이 사전 원고 한 묶음을 목숨처럼 품고 달리던 장면 때문이었습니다.민족말살정책, 말을 빼앗는다는 것의 무게1930년대에서 40년대는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 절정에 달한 시기입니다. 민족말살정책이란 일제가 조선 민족의 정체성 자체를 지우기 위해 언어·이름·문화를 조직적으로 억압한 통치 방식을 가리킵니다. 단순한 탄압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지우려는 시도였습니다.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짚어보면, 그 범위가 상당히 넓습니다.내선일체(內鮮一體): "일본과 조선은 본래 하나의 나라"라는 논리로 동화를 강요한 이념창씨개명(創氏改..
학창 시절 윤동주의 시를 줄줄 외우면서도 그게 얼마나 무거운 말인지 몰랐습니다. 영화 를 보고 나서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이라는 문장이 시험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의 필사적인 다짐이었다는 게 비로소 느껴졌습니다. 위대한 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열등감과 흔들림을 안고도 끝까지 자기 자리를 지킨 청년의 이야기로 다시 읽혔습니다.창씨개명과 유학, 1943년의 선택이라는 벽영화를 보면서 제가 처음 멈칫했던 장면은 윤동주와 송몽규가 일본 유학을 위해 창씨개명을 해야 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창씨개명이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1940년부터 조선인에게 일본식 성명을 강제로 채택하게 한 동화 정책입니다. 쉽게 말해 자기 이름을 버려야만 배움의 기회가 주어지는 구조였습니다. 윤동주는 히라노 도주라는 이..
솔직히 처음 극장에서 암살을 봤을 때는 그냥 여름 블록버스터쯤으로 생각했습니다.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가 한 화면에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유였으니까요. 그런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나서도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총격전이 아니라 시대의 무게 때문이었습니다.무단통치 시대가 배경인 이유, 그냥 선택이 아니다영화 암살은 1933년 경성을 배경으로 합니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이어진 일제강점기를 흔히 세 시기로 나누는데, 1기는 무단통치(1910~1919), 2기는 문화통치(1920년대), 3기는 민족말살통치(1930년대 이후)입니다. 여기서 민족말살통치란 일본이 조선의 언어·문화·이름까지 강제로 말소하려 한 시기로, 독립운동 탄압이 가장 극심했던 때를 말합니다.1933년이라는 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