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장마철이 끝날 무렵, 제가 살던 동네에서 갑자기 도로 한쪽이 내려앉은 적이 있었습니다. 건물이 빠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평소 아무렇지 않게 지나다니던 길이 하루아침에 노란 통제선으로 막혀버렸습니다. 그때 느꼈던 묘한 공포감이 영화 싱크홀을 보는 내내 자꾸 떠올랐습니다. 단순한 재난 오락 영화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감각이 몰입을 끌어올렸습니다.재난 서사로 본 싱크홀의 현실 배경싱크홀(Sinkhole)이란 지하 공동(空洞), 즉 땅속에 생긴 빈 공간이 붕괴되면서 지표면이 갑자기 꺼지는 지질 현상을 말합니다. 영화에서처럼 건물 한 동이 통째로 지하로 빨려 들어가는 건 극적인 연출이지만, 실제로도 도심 싱크홀 사고는 꾸준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
비행기를 타다 보면 한 번쯤은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 이 순간 뭔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저도 출장길에 갑작스러운 난기류를 만난 적이 있는데, 불과 몇 분 만에 손에 땀이 흠뻑 났습니다. 영화 비상선언은 바로 그 공포를 2시간 넘게 스크린 위에 올려놓은 작품입니다. 재난 블록버스터로서의 완성도와 한계를 동시에 가진 이 영화, 어떻게 봐야 할지 정리해 봤습니다.비행기라는 밀실, 재난영화의 배경이 되다재난영화 장르에서 공간 설정은 긴장감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입니다. 자동차나 기차는 멈출 수라도 있지만, 비행기는 그게 안 됩니다. 1만 피트 상공에서 문제가 생기면 승객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비상선언은 바로 이 밀폐된 공간이 주는 공포를 출발점으로 삼습니다.영화는 공항에서 한..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처음엔 그냥 여름 코미디 영화로 봤습니다. 재난 설정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설마 이렇게 손에 땀을 쥐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하면, 주인공 용남의 처지가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초반부터 자꾸 마음이 걸렸습니다.취업 실패한 청년의 이야기가 현실인 이유일반적으로 재난 영화의 주인공은 특수 훈련을 받은 전문가이거나, 적어도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인물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 영화는 그 공식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용남은 대학 시절 클라이밍(암벽등반) 동아리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지만, 졸업 후에는 취업에 수차례 실패한 채 어머니의 칠순잔치에서 친척들의 시선을 피해 다니는 신세입니다.저도 한동안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던 시기에 ..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별 기대 없이 켰습니다. 제목도 그렇고, 포스터도 딱히 눈에 띄지 않아서 그냥 시간이나 때우자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시작하고 10분도 안 돼서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범죄 스릴러인데 피식피식 웃게 만드는 영화, 그게 바로 끝까지 간다였습니다.한 번 꼬이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 이 영화의 배경저는 일이 꼬일 때 연달아 터지는 상황을 몸소 겪어본 적이 있습니다. 중요한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날 컴퓨터가 먹통이 됐고, 복구하느라 정신없는 사이 상사 연락이 쏟아졌습니다. 그 순간 진짜로 "세상이 나만 노리는 건가" 싶었습니다. 끝까지 간다를 보면서 그 감각이 고스란히 떠올랐습니다.영화 속 고건수 형사는 어머니 장례를 치르는 날, 음주 상태에서 사람을 차로 치게 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단순한 폭발 장면 위주의 재난 오락영화겠거니 하고 앉았는데, 중간부터는 휴대폰을 내려놓게 되더군요. 영화 백두산은 화산 지수(VEI) 8등급이라는 극단적 재난 설정을 한국적 감정선과 결합한 작품입니다. 재난 스펙터클과 인물의 선택 사이에서 이 영화가 어디쯤 서 있는지, 직접 보고 나서 정리해 봤습니다.백두산 폭발, 완전히 허구로 볼 수 없는 이유일반적으로 백두산 화산 폭발은 먼 미래의 이야기, 혹은 학자들끼리 하는 논쟁 정도로 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기 전에 관련 다큐멘터리를 몇 편 접하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백두산은 실제로 지질학적으로 활화산(Active Volcano)으로 분류됩니다. 활화산이란 현재도 마그마 ..
복수를 끝낸 사람이 행복해졌다는 이야기를 저는 잘 믿지 않습니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를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잔인한 스릴러라고 생각했는데, 몇 년이 지나 다시 보고 나서 완전히 다른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단순히 범인을 응징하는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복수가 사람을 어디까지 바꿔 놓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였습니다.국정원 요원과 연쇄살인마가 만들어낸 이야기의 구조영화는 단순해 보이는 설정에서 시작합니다.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 주연이 눈 내리는 밤 연쇄살인마 장경철에게 납치되어 살해됩니다. 국정원 요원인 약혼자 수현은 범인을 찾아 복수를 결심하고, 그때부터 둘의 기묘한 추격전이 시작됩니다.제가 이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건 서사 구조 자체였습니다. 일반적인 복수 스릴러가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향하는 단선적 플롯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