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에서 "우리는 한 팀이야"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저도 그 말을 믿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2003년에 개봉한 영화 실미도를 처음 봤을 때, 그 믿음이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 서 있었는지를 스크린을 통해 다시 확인하게 됐습니다. 684부대의 이야기는 단순한 군사 액션이 아니라, 국가와 개인 사이의 냉혹한 계약 관계를 정면으로 들여다보는 작품입니다.1968년, 그 섬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실미도 사건의 시작은 196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북한 124군 부대 소속 무장공작원 31명이 청와대 기습을 시도한 이른바 1·21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여기서 1·21 사태란 북한 특수부대원들이 서울 청와대 인근까지 침투한 대남도발 사건으로, 당시 한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습니다. 이..
범죄 영화를 보고 나면 보통 후련해지지 않나요? 저는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그 반대였습니다. 보고 나서 며칠 동안 기분이 묘하게 가라앉았고, 뭔가 해소되지 않은 감정이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됐는데, 이 영화는 처음부터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줄 생각이 없었던 겁니다.1986년 경기도, 그 시절이 가진 무게살인의 추억은 1986년 경기도 화성에서 실제로 발생한 연쇄살인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미결사건(未決事件)이란 수사가 종결되지 않은 채 공소시효가 만료되거나 범인을 특정하지 못한 사건을 의미하는데, 화성연쇄살인사건은 2019년 이춘재가 자백하기 전까지 30년 넘게 대표적인 미결사건으로 남아 있었습니다.영화가 처음 개봉했던 2003년만 해도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고, 그 ..
밤에 혼자 골목길을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영화 추격자를 보고 나서 한동안 그랬습니다. 단순히 무서워서가 아니라, 저 앞에 걸어가는 사람이 뉴스에서 봤던 그 얼굴과 겹쳐 보이는 느낌이 들어서였습니다. 2008년 개봉한 나홍진 감독의 데뷔작 추격자는 그런 영화입니다. 오래 지나도 선명하게 남는 공포가 있습니다.범죄 실화를 닮은 서사구조, 어디서 왔나추격자가 개봉 당시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유 중 하나는 실화를 기반으로 한 서사 구조 때문입니다. 영화는 2003년부터 2004년 사이 서울에서 발생한 연쇄 살인 사건, 이른바 유영철 사건에서 모티프를 가져왔습니다. 실제로 피해자 다수가 유흥업소 종사자였고, 범인이 피해자를 주거지로 유인하는 방식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영화와 구조가..
누아르 영화라고 하면 어둡고 잔인한 액션이 전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많지 않으신가요?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달콤한 인생을 다시 들여다보니, 이 영화의 핵심은 총격전이 아니라 한 남자가 자기감정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분위기에 먼저 압도됐고, 나중엔 허무함에 오래 눌렸습니다.연출 의도: 멋있게 보이려 했던 게 오히려 패착이었다일반적으로 누아르 영화는 강렬한 첫 장면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달콤한 인생은 반대로 갔습니다. 선우가 쫓기는 액션 신으로 시작하려다 "너무 전형적이다"는 이유로 삭제했고, 대신 불교 선종의 선문답인 풍번 문답(風幡問答)으로 영화를 열었습니다. 풍번 문답이란 "움직이는 것은 바람도 깃발도 아닌 마음이다"라는 혜능의 가르침으로, 외부 세계가 아..
1979년 10월 26일, 현직 대통령이 자신의 정보기관 수장에게 암살당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제가 먼저 느낀 건 분노나 슬픔이 아니라 묘한 답답함이었습니다. 역사는 그날 총소리 한 방으로 바뀐 게 아니라, 그전에 이미 한참 동안 망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필름누아르 장르로 읽는 권력의 냄새우민호 감독은 이 작품을 필름누아르(Film Noir) 장르로 설계했습니다. 필름누아르란 비도덕적인 인물들이 빛과 그림자가 극단적으로 교차하는 화면 속에서 파멸로 향하는 서사 구조를 말합니다. 음모, 배신, 냉소적인 인물 관계가 중심이 되는 장르인데, 1970년대 말 대한민국 권력의 최정점을 배경으로 삼은 이 작품과 꽤 잘 맞아떨어집니다.제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주인공이 처음부..
1,300만 명이 극장을 찾은 영화가 결말을 아는 관객에게도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는 건, 단순한 흥행 숫자 이상의 의미입니다. 저도 처음 보는 내내 '이번엔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황당한 희망을 품었다가 결말 앞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영화 서울의 봄은 1979년 12.12 군사반란을 배경으로, 하룻밤 사이 대한민국의 군사 권력이 어떻게 뒤집혔는지를 다룬 작품입니다.결말을 알아도 손에 땀이 나는 이유 — 역사고증의 힘영화는 시작부터 역사고증에 집착에 가까운 공을 들입니다. 전군 지휘관 회의 장면에서는 실제 기록 화면과 동일한 앵글과 숏 매너(shot manner)로 촬영했고, 실존 인물들이 실제로 앉아 있던 자리까지 재현했습니다. 여기서 숏 매너란 카메라 앵글, 피사체와의 거리, 촬영 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