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을 나오면서 분명히 눈물을 닦았는데,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상하게도 인물이 아니라 장면만 떠올랐습니다. 치매를 앓는 할머니와 어린 손녀의 이야기를 담은 는 나문희, 김수안 두 배우의 조합만으로도 충분히 화제가 된 작품입니다. 저도 처음엔 당연히 울 준비를 하고 들어갔는데, 영화가 끝난 뒤에 남은 것이 생각보다 적어서 오히려 그게 더 오래 마음에 걸렸습니다.공감의 질 — 인물에 울었나, 상황에 울었나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분명히 울컥했는데, 나중에 왜 울었는지를 되짚어 보니 특정 장면 때문이었지 두 사람의 관계가 마음에 쌓였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이 차이가 생각보다 큽니다.영화 비평에서 자주 쓰이는 개념 중에 '감정적 서사 구축(emotional narrati..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요. 저도 한동안 혼자 다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를 보면서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지체장애인 세하와 지적장애인 동구,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살아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상호의존 —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약함이 아닌 이유직장 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저는 모르는 일도 혼자 끙끙 앓으며 붙들고 있는 편이었습니다. 도움을 구하면 능력이 없어 보일까 봐, 빚을 지는 것 같아서. 그러다 결국 기한을 넘기고 동료에게 민폐를 끼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용기 내어 솔직하게 도움을 요청한 뒤부터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저는 문서 정리와 계획을 맡고, 동료는 현장 경험으로 빈 곳을..
에베레스트(해발 8,849m)에서 하산하던 중 동료를 구하려다 눈사태에 휩쓸린 산악인의 실화. 처음엔 그냥 산 오르는 영화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저는 멍하니 화면만 보고 있었습니다. 정상 장면보다 다시 산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더 오래 남았기 때문입니다.실화가 된 이유 — 산악인 엄홍길과 박무택의 이야기영화 〈히말라야〉(2015)는 실존 인물인 산악인 엄홍길 대장과 그의 후배 박무택 대원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히말라야 14좌 완등이란 지구상 해발 8,000m가 넘는 봉우리 열네 개를 모두 오르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서 14좌란 에베레스트, K2, 칸첸중가 등 인류가 정복하기 가장 어렵다고 꼽히는 고봉들의 집합입니다. 엄홍길 대장은 이 14좌를 세계 최초로 완등한 산악인 ..
영화관에서 나오면서 친구랑 말이 달랐던 적 있으신가요? 저는 「군도: 민란의 시대」를 보고 나서 딱 그 상황이었습니다. 친구는 "너무 만화 같다"고 했고, 저는 오히려 그 과장된 에너지가 좋았습니다. 2014년 개봉한 윤종빈 감독과 하정우의 다섯 번째 협업작으로, 조선 후기 실존했다는 의적 집단 '추설'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지금 봐도 꽤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촬영 비하인드를 알고 나서 다시 떠올리면, 장면 하나하나가 전혀 다르게 읽힙니다.비하인드로 보는 촬영기법, 알면 다시 보인다제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솔직히 CG인지 실사인지 구분도 잘 안 됐습니다. 나중에 촬영 비하인드를 접하고 나서야, 이 영화가 얼마나 치밀하게 만들어졌는지 실감했습니다.영화 도입부의 황량한 벌판은 새만금 현지에..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봅니다. 말 잘하고 능력도 있어 보이는 누군가가 중심에 서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몰려들고 그 사람 눈치를 보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걸요. 영화 을 보면서 저도 비슷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꼭 검찰청이나 국회가 아니어도, 작은 조직 안에서도 권력의 작동 방식은 놀랍도록 닮아 있었습니다.권력 구조를 보여주는 방식이 달랐다의 주인공 박태수는 전형적인 입지전적(立志傳的) 인물로 시작합니다. 입지전적이란 밑바닥에서 출발해 스스로의 힘으로 성공의 자리에 오른 인물 유형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시끄러운 곳일수록 집중이 잘 된다는 특이한 체질로 전교 1등을 찍고, 서울대 입학 후 사법고시까지 한 번에 통과합니다. 얼굴까지 출중하니 세상이 그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기울어진 것처럼..
가장 나쁜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처음에는 당연히 깡패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친구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정작 손에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모든 판을 설계한 사람들이 따로 있다는 사실이 훨씬 더 불편하게 남았습니다. 영화 은 그 불편함을 끝까지 놓아주지 않는 작품입니다.권력 구조 — 누가 진짜 판을 짜는가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솔직히 안상구라는 인물이 가장 위험한 존재처럼 느껴졌습니다. 폭력적이고 거칠고, 첫 장면부터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냅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다시 봤을 때 제가 직접 느낀 건, 이 사람이 오히려 가장 아래에 놓인 인물이라는 점이었습니다.영화 속 권력 구조는 크게 세 층위로 나뉩니다. 신정당의 대선 후보 장피로를 정점으로, 조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