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메이커》는 2022년 개봉 당시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지만, 평단에서는 근래 보기 드문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또 정치 영화'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앉았다가, 어릴 때 선거철마다 집안 분위기가 묘하게 달라지던 기억이 불쑥 떠올라서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이 영화가 정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은 인간의 인정 욕구와 그림자 심리를 파고든 작품이라는 게 제 결론입니다.실화 고증의 힘과 한국 영화의 구조적 한계영화는 1960년대 초반 선거판을 배경으로, 실존 인물들의 행보를 놀라울 정도로 촘촘하게 재현합니다. 1967년 목포 선거, 40대 기수론이 폭발하던 신민당 전당대회, 유진산 총재에 대한 당시의 시선, 대선 후보 경선에서 나온 무효표 한 장까지. 제가 직접 관련 역사 자..
경제 영화를 보다 중간에 집중력을 잃어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꽤 자주 그랬습니다. 그런데 블랙머니는 달랐습니다. 복잡한 금융 구조를 설명하는 대신 두 인물의 선택을 따라가게 만들었고, 그 덕분에 끝까지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뒤에는 실제 사건이 궁금해졌습니다.인물 선택 — 경제 영화가 설명을 포기했을 때 생기는 일경제를 다룬 영화에는 공통된 딜레마가 있습니다. 금융 용어와 복잡한 거래 구조를 어디까지 설명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국가부도의 날은 IMF 외환위기라는 거시 경제적 충격을 인물들의 감정과 직접적인 피해를 통해 전달했고, 빅쇼트(The Big Short)는 반대로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 즉 신용등급이 낮은 차입자에게 제공된 고위험 주택담..
법이 사람을 지킨다고 배웠는데, 법이 사람을 가두는 도구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영화 「재심」을 보면서 제가 오래전에 지인에게 들었던 말 하나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힘없는 사람은 끝까지 버티기 어렵다"는 말이었는데, 그때는 그냥 하소연처럼 흘려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실제로 일어난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 기사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그 말이 얼마나 현실이었는지, 보는 내내 속이 무거웠습니다.공권력 조작, 이렇게 정밀하게 이루어진다「재심」에서 가장 소름 돋았던 장면은 사실 폭행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강력팀 팀장 철기가 현우를 경찰서도 아닌 모텔로 끌고 가 자백을 받아내는 장면, 그리고 다방에서 칼을 직접 가져와 증거로 만들어내는 장면이었습니다. 이건 단순한 악의..
국익을 위한다는 말이 누군가의 입을 막는 데 쓰인다면, 그게 과연 국익일까요. 2019년 개봉한 영화 는 황우석 박사 논문조작 사건을 배경으로, 진실을 말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하고 외로운 선택인지를 보여줍니다. 저도 직장에서 "다들 맞다고 하니까 맞겠지" 하고 입을 닫았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 영화가 유독 마음에 걸렸습니다.논문조작의 구조: 숫자가 말해주는 것영화가 실화를 얼마나 정확하게 담았는지를 따져보면, 오히려 더 무서워집니다. 실제 황우석 사건에서 문제가 된 핵심은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SCNT 줄기세포)였습니다. 여기서 SCNT란 Somatic Cell Nuclear Transfer의 약자로, 환자의 체세포 핵을 핵을 제거한 난자에 이식해 배아 줄기세포를 만드는 기술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환..
1997년, 대한민국의 외환보유고는 90억 달러 아래로 떨어지기 직전이었습니다. 당시 1달러에 약 800원이었던 환율은 결국 2,000원을 넘어섰고, 나라 전체가 흔들렸습니다. 영화 을 보고 나서 저는 부모님이 그 시절을 이야기하실 때 왜 목소리가 낮아지셨는지를 비로소 이해했습니다.외환보유고 붕괴 직전, 그 7일간의 기록영화는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이 위기를 처음 감지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외환보유고(Foreign Exchange Reserve)란 나라가 대외 결제나 환율 방어에 쓸 수 있도록 비축해 둔 외화 자산입니다. 당시 대한민국의 외환보유고는 겉으로는 수백억 달러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쓸 수 있는 가용 외환은 바닥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습니다.제가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는 솔직히 숫자가 귀에 잘..
재능이 있어도 얼굴 때문에 무대 뒤에 숨어야 한다면, 그게 과연 공정한 세상일까요. 친구들과 영화 「미녀는 괴로워」를 다시 봤을 때 저는 이 질문이 머릿속에서 오래 떠나지 않았습니다. 처음 봤을 때는 그냥 노래 좋고 웃긴 영화였는데, 다시 보니 한나가 겪는 고통이 낯설지 않아서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무대 뒤에서 살아가던 섀도우 싱어의 시간한나는 섀도우 싱어(shadow singer)입니다. 여기서 섀도우 싱어란 인기 가수의 무대 뒤에서 실제 노래를 대신 불러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목소리는 대중에게 닿지만, 얼굴은 절대 보여서는 안 되는 존재. 그 아이러니가 영화 내내 한나를 조여 옵니다.제가 직접 겪어보니, 자신의 어떤 부분을 계속 숨겨야 하는 상황은 생각보다 사람을 빨리 지치게 만듭니다. 저도 한때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