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끝나고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적 있으신가요? 저는 스윙키즈를 보고 나서 그랬습니다. 춤이 좋아서 춤을 췄을 뿐인데 총에 맞아 쓰러지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강영철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6.25전쟁 당시 거제 포로 수용소를 배경으로 북한군 포로 로기수와 오합지졸 댄스단 스윙키즈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입니다. 웃음과 비극이 공존하는 이 영화, 단순한 음악 영화로 보기엔 할 말이 너무 많습니다.탭댄스 하나에 이념이 흔들린다는 게 믿어지시나요?영화 속 로기수는 처음에 전형적인 친공 포로입니다. 친공 포로란 포로 신분임에도 공산주의 이념을 끝까지 고수하며 수용소 안에서 폭동과 선동을 주도하는 집단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남자가 흑인 병사 잭슨의 탭댄스를 한 번 목격한 뒤 서서히..
고향을 떠올릴 때 따뜻한 기억만 남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영화 은 래퍼를 꿈꾸는 청년 김학수가 아버지의 병환 소식에 마지못해 고향 변산으로 내려가며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이상하게 편하지 않았던 건, 학수의 이야기가 제 것과 겹치는 부분이 꽤 있었기 때문입니다.고향 콤플렉스 — 도망치고 싶었던 그 동네혹시 고향 이야기를 꺼낼 때 괜히 목소리가 작아진 적 있으신가요. 저는 솔직히 그런 적이 있습니다. 고향이 어딘지 물어보는 사람에게 대답은 했지만, 뭔가 뒤따라오는 설명을 덧붙이고 싶은 충동 같은 게 있었습니다. "거기가 이제 많이 발전했는데..." 하는 식으로요.학수도 비슷합니다. 서울에서 시급 6,000원짜리 알바를 하면서 쇼미더머니(Mnet의 래퍼 오디션 프로그램)에 해마..
직장에서 능력이 있어도 학벌 때문에 기회를 못 받는 사람, 주변에 한 명쯤은 있지 않으신가요.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바로 그 불편한 현실을 정면으로 꺼내든 작품입니다. 저도 처음엔 단순한 직장 코미디겠거니 했는데, 보고 나서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학벌 차별, 영화가 아니라 현실 얘기입니다영화의 배경은 1995년입니다. 당시는 정부 주도의 글로벌화 정책으로 직장인 사이에서 영어 능력이 핵심 스펙으로 떠오르던 시기였습니다. 주인공 세 명, 오자영·정유나·심보람은 모두 상고 출신 여성 직원입니다. 삼진그룹이라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지만, 이들에게 주어진 업무는 서류 정리와 커피 심부름, 청소까지였습니다.저도 비슷한 상황을 직접 본 적이 있습니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지인이 학벌이 좋지 않다는 이..
관객 1,130만 명. 2009년 한국 재난영화의 역사를 새로 쓴 숫자입니다. 처음 봤을 때 저는 솔직히 "어, 한국에서도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구나" 하고 감탄했는데, 시간이 지나 다시 꺼내 보니 가장 오래 남은 건 파도의 크기가 아니라 그 파도 앞에 선 사람들의 얼굴이었습니다.줄거리: 재난 전야의 평범한 하루영화는 2004년 인도양에서 발생한 실제 쓰나미(지진해일)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쓰나미란 해저 지진이나 화산 폭발로 생성된 거대 파장이 육지까지 밀려드는 현상으로, 일반 파도와 달리 수십 킬로미터 속도로 진행하며 해안에 가까워질수록 파고(波高)가 급격히 높아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원양어선 선장 만식은 이 사고 현장에서 동료의 아버지를 잃게 만든 죄책감을 안고 살아갑니다.5년 뒤 무대는 여..
영화 은 단순한 재난 생존 영화가 아닙니다.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 속에 갇힌 한 남자의 이야기를 빌려, 사고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민낯을 정면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처음에는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보고 나서 한참 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무너진 터널보다 더 무서운 것이 화면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줄거리 — 터널이 무너지던 그 순간딸의 생일 케이크를 사들고 집으로 향하던 평범한 직장인 이정수. 그가 터널에 진입하는 순간, 갑자기 알 수 없는 소리와 함께 불이 꺼지고 천장이 무너져 내립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터널 붕괴로 그는 차 안에 그대로 고립되고 맙니다.정신을 차린 정수는 즉시 신고를 합니다. 구조 요청을 하자마자 가장 먼저 걸려온 전화가 언론사 기자였다는 장면..
조선 최초의 자동 물시계 자격루가 완성된 것은 1434년, 세종 16년의 일입니다. 그 순간을 처음 영상으로 접했을 때, 저는 단순히 발명 성공 장면이라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수없이 실패하고, 주변의 반발을 버티며, 그럼에도 끝내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의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장면이라는 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자격루가 울리기까지 — 실패 없이 완성되는 기술은 없다자격루(自擊漏)는 단순한 물시계가 아닙니다. 여기서 자격루란 물이 일정하게 차오르면 그 무게로 구슬이 떨어지고, 그 구슬이 인형 장치를 건드려 종·북·징을 자동으로 울리는 자동 시보 장치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사람이 직접 옆에서 지켜보지 않아도 스스로 시간을 알리는 기계였습니다. 당시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발상이었습니다.제가 직접 이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