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을 많이 받은 영화가 반드시 가장 좋은 영화일까요? 솔직히 저도 미나리를 보기 전까지는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에 아카데미까지 거론되는 작품이니 기생충 같은 긴장감과 반전이 있을 거라고 당연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든 감정은 예상과는 꽤 달랐습니다. 이 영화는 거대한 사건 없이도 오래 남는 영화였고, 동시에 왜 이 작품이 이 시점에 이토록 주목받는지 곱씹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이민자 정서: 미국 영화인데 왜 이렇게 한국 냄새가 날까일반적으로 미나리를 한국계 미국인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소개하지만,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조금 달랐습니다. 배경은 분명 1980년대 아칸소 허허벌판이고, 대사도 대부분 한국어인데, 이 영화는 제가 알고 있는 미국 이민자 영화의 문법을 ..
스포츠 영화에서 주인공이 처음부터 잘하는 걸 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오히려 그런 영화를 보면 흥미가 뚝 떨어집니다. 2009년 개봉한 영화 〈국가대표〉는 800만 관객을 모은 스포츠 영화의 최다 흥행작인데, 정작 이 영화에 나오는 선수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된 것 하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게 이 영화의 전부였습니다.이 선수들은 왜 이렇게 사연이 많을까영화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스키점프라는 종목보다 인물들의 사연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해외 입양인 차헌태, 약물 복용으로 자격 정지를 당한 흥철, 군 면제만 바라는 구, 지렁이 잡는 봉구까지.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이 사람들이 실패자가 아니라 각자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겁니다.특히 차헌태가 방송 스튜디오에서 어머니의 기억을 더듬는 ..
처음엔 그냥 코미디 영화인 줄 알았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민원을 넣는 할머니와 원칙만 따지는 공무원의 티격태격이 너무 현실적이라서요.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웃다가 어느 순간 울컥해버리는 영화, 2017년 개봉 후 8월 13일 재개봉하는 아이캔스피크 이야기입니다.첫인상만으로 사람을 판단했던 적 있으신가요공공기관 민원실이라는 공간은 참 독특한 곳입니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다 보면 별별 사람을 다 만납니다. 저도 예전에 구청에 서류를 떼러 갔다가 창구 앞에서 한참을 큰 목소리로 따지는 어르신을 옆에서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솔직히 그때는 속으로 '저분은 왜 저러실까' 하고 생각했습니다.아이캔스피크의 옥분 할머니(나문희 분)가 딱 그런 인물입니다. 20년간 8,..
처음 베테랑을 극장에서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화려한 액션을 기대하고 들어갔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남은 건 통쾌함보다 묘한 분노였습니다. 배기사가 조태오에게 당하는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1,300만 관객이 왜 이 영화에 열광했는지, 직접 겪어보니 단번에 이해가 됐습니다.현실이 스크린에 옮겨온 순간, 분노가 공감이 되다영화를 보는 내내 자꾸 과거 직장 생활이 떠올랐습니다. 힘 있는 사람 앞에서는 굽신거리다가 힘없는 사람에게만 강하게 나오는 동료를 본 적이 있었는데, 조태오가 딱 그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영화처럼 극단적인 수준은 아니었지만,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상대를 무시하는 방식은 현실에서도 낯설지 않았습니다.베테랑이 단순한 오락 영화로..
조직에서 "우리는 한 팀이야"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저도 그 말을 믿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2003년에 개봉한 영화 실미도를 처음 봤을 때, 그 믿음이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 서 있었는지를 스크린을 통해 다시 확인하게 됐습니다. 684부대의 이야기는 단순한 군사 액션이 아니라, 국가와 개인 사이의 냉혹한 계약 관계를 정면으로 들여다보는 작품입니다.1968년, 그 섬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실미도 사건의 시작은 196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북한 124군 부대 소속 무장공작원 31명이 청와대 기습을 시도한 이른바 1·21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여기서 1·21 사태란 북한 특수부대원들이 서울 청와대 인근까지 침투한 대남도발 사건으로, 당시 한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습니다. 이..
누아르 영화라고 하면 어둡고 잔인한 액션이 전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많지 않으신가요?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달콤한 인생을 다시 들여다보니, 이 영화의 핵심은 총격전이 아니라 한 남자가 자기감정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분위기에 먼저 압도됐고, 나중엔 허무함에 오래 눌렸습니다.연출 의도: 멋있게 보이려 했던 게 오히려 패착이었다일반적으로 누아르 영화는 강렬한 첫 장면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달콤한 인생은 반대로 갔습니다. 선우가 쫓기는 액션 신으로 시작하려다 "너무 전형적이다"는 이유로 삭제했고, 대신 불교 선종의 선문답인 풍번 문답(風幡問答)으로 영화를 열었습니다. 풍번 문답이란 "움직이는 것은 바람도 깃발도 아닌 마음이다"라는 혜능의 가르침으로, 외부 세계가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