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 26일, 현직 대통령이 자신의 정보기관 수장에게 암살당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제가 먼저 느낀 건 분노나 슬픔이 아니라 묘한 답답함이었습니다. 역사는 그날 총소리 한 방으로 바뀐 게 아니라, 그전에 이미 한참 동안 망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필름누아르 장르로 읽는 권력의 냄새우민호 감독은 이 작품을 필름누아르(Film Noir) 장르로 설계했습니다. 필름누아르란 비도덕적인 인물들이 빛과 그림자가 극단적으로 교차하는 화면 속에서 파멸로 향하는 서사 구조를 말합니다. 음모, 배신, 냉소적인 인물 관계가 중심이 되는 장르인데, 1970년대 말 대한민국 권력의 최정점을 배경으로 삼은 이 작품과 꽤 잘 맞아떨어집니다.제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주인공이 처음부..
1,300만 명이 극장을 찾은 영화가 결말을 아는 관객에게도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는 건, 단순한 흥행 숫자 이상의 의미입니다. 저도 처음 보는 내내 '이번엔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황당한 희망을 품었다가 결말 앞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영화 서울의 봄은 1979년 12.12 군사반란을 배경으로, 하룻밤 사이 대한민국의 군사 권력이 어떻게 뒤집혔는지를 다룬 작품입니다.결말을 알아도 손에 땀이 나는 이유 — 역사고증의 힘영화는 시작부터 역사고증에 집착에 가까운 공을 들입니다. 전군 지휘관 회의 장면에서는 실제 기록 화면과 동일한 앵글과 숏 매너(shot manner)로 촬영했고, 실존 인물들이 실제로 앉아 있던 자리까지 재현했습니다. 여기서 숏 매너란 카메라 앵글, 피사체와의 거리, 촬영 방향..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그냥 잘 만든 감동 영화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장애인 가족의 고통을 다룬 신파 한 편 정도로 정리했던 거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보니 제가 많이 틀렸더라고요. 2005년 개봉해 5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말아톤은, 단순한 감동 영화가 아니라 한 인간이 자기 방식으로 세상과 접촉하는 이야기였습니다.조승우가 초원이를 연기한 방식일반적으로 장애인을 연기하는 배우는 특정 행동 패턴을 반복 훈련해 외형을 모방하는 방식을 쓴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조승우의 연기를 자세히 보면 꽤 다릅니다.메소드 연기(Method Acting)란 배우가 역할의 내면 심리와 감정을 실제로 체험함으로써 캐릭터와 동화되는 연기 기법입니다.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
가장 순수한 사람이 가장 억울한 상황에 놓인다면, 과연 법은 그를 지켜줄 수 있을까요. 2013년 개봉해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7번 방의 선물을 처음 봤을 때, 저는 그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단순한 감동 영화라고 생각했다가 전혀 다른 감정을 안고 극장을 나왔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지적장애를 가진 아버지와 누명, 그 배경용구는 여섯 살 수준의 지능을 가진 지적장애인입니다. 그는 마트 주차 요원으로 일하며 딸 예승이를 홀로 키우는 아버지이기도 하죠. 영화는 그가 어떻게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쓰게 됐는지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보여줍니다.경찰청장의 딸이 골목에서 빙판에 미끄러져 사망한 순간, 용구는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아이가 쓰러지자 본능적으로 심폐소생술(CPR)을 시도했고, 숨을 불어..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처음엔 그냥 여름 코미디 영화로 봤습니다. 재난 설정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설마 이렇게 손에 땀을 쥐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하면, 주인공 용남의 처지가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초반부터 자꾸 마음이 걸렸습니다.취업 실패한 청년의 이야기가 현실인 이유일반적으로 재난 영화의 주인공은 특수 훈련을 받은 전문가이거나, 적어도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인물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 영화는 그 공식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용남은 대학 시절 클라이밍(암벽등반) 동아리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지만, 졸업 후에는 취업에 수차례 실패한 채 어머니의 칠순잔치에서 친척들의 시선을 피해 다니는 신세입니다.저도 한동안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던 시기에 ..
정의로운 사람이 처음부터 정의로웠다면, 그 이야기는 그렇게까지 가슴을 치지 않았을 겁니다. 영화 변호인은 2013년 개봉 당시 1,13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한국 영화 흥행 기록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손이 땀에 젖었고, 다 보고 나서도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단순히 슬퍼서가 아니라, 화가 나서였습니다.부림사건, 이 이름을 아십니까영화를 보기 전에 이 사건의 이름을 아는 분이 얼마나 될까요? 부림사건은 1981년 전두환 군부 정권 하에서 부산 지역 학생과 청년들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집단 기소된 사건입니다. 여기서 국가보안법이란 반국가 단체를 찬양하거나 이를 이롭게 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법률로, 군사 정권 시절에는 이 법이 정치적 반대 세력을 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