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능력이 있어도 학벌 때문에 기회를 못 받는 사람, 주변에 한 명쯤은 있지 않으신가요.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바로 그 불편한 현실을 정면으로 꺼내든 작품입니다. 저도 처음엔 단순한 직장 코미디겠거니 했는데, 보고 나서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학벌 차별, 영화가 아니라 현실 얘기입니다영화의 배경은 1995년입니다. 당시는 정부 주도의 글로벌화 정책으로 직장인 사이에서 영어 능력이 핵심 스펙으로 떠오르던 시기였습니다. 주인공 세 명, 오자영·정유나·심보람은 모두 상고 출신 여성 직원입니다. 삼진그룹이라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지만, 이들에게 주어진 업무는 서류 정리와 커피 심부름, 청소까지였습니다.저도 비슷한 상황을 직접 본 적이 있습니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지인이 학벌이 좋지 않다는 이..
관객 1,130만 명. 2009년 한국 재난영화의 역사를 새로 쓴 숫자입니다. 처음 봤을 때 저는 솔직히 "어, 한국에서도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구나" 하고 감탄했는데, 시간이 지나 다시 꺼내 보니 가장 오래 남은 건 파도의 크기가 아니라 그 파도 앞에 선 사람들의 얼굴이었습니다.줄거리: 재난 전야의 평범한 하루영화는 2004년 인도양에서 발생한 실제 쓰나미(지진해일)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쓰나미란 해저 지진이나 화산 폭발로 생성된 거대 파장이 육지까지 밀려드는 현상으로, 일반 파도와 달리 수십 킬로미터 속도로 진행하며 해안에 가까워질수록 파고(波高)가 급격히 높아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원양어선 선장 만식은 이 사고 현장에서 동료의 아버지를 잃게 만든 죄책감을 안고 살아갑니다.5년 뒤 무대는 여..
우리말을 쓰다가 잡혀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940년대, 조선어 사용이 법으로 금지되던 그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영화 를 처음 봤을 때 저도 모르게 손이 멈췄습니다. 총 한 자루 없이 사전 원고 한 묶음을 목숨처럼 품고 달리던 장면 때문이었습니다.민족말살정책, 말을 빼앗는다는 것의 무게1930년대에서 40년대는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 절정에 달한 시기입니다. 민족말살정책이란 일제가 조선 민족의 정체성 자체를 지우기 위해 언어·이름·문화를 조직적으로 억압한 통치 방식을 가리킵니다. 단순한 탄압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지우려는 시도였습니다.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짚어보면, 그 범위가 상당히 넓습니다.내선일체(內鮮一體): "일본과 조선은 본래 하나의 나라"라는 논리로 동화를 강요한 이념창씨개명(創氏改..
40대에 갑자기 백수가 됐을 때, 가장 무너지는 건 통장 잔고가 아니라 "나는 뭐 하는 사람이지?"라는 질문입니다. 영화 는 그 질문을 정면으로 꺼내든 작품입니다. 처음엔 가볍게 봤는데, 어느 순간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제 이야기 같아서요.백수가 된 40대 PD, 배경부터 짚고 가야 합니다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감독인 김초희 씨가 수년간 독립영화 제작 현장에서 PD로 일하다 실직한 뒤, 고향에서 반찬가게를 하려고 짐을 싸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그 시절 작품 속 집주인 할머니 역을 맡은 배우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고 다시 일어나, 직접 감독이 되어 자신의 과거를 영화로 만든 것이 바로 이 작품입니다.영화 속 찬실은 오랫동안 지감독과 호흡을 맞춰온 프로듀서(Producer)입니다. 여기서 프로..
진짜 왕이 더 나쁜 왕이었다면, 우리는 그 가짜를 왕으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다시 봤을 때 저는 이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처음 극장에서 볼 땐 그저 "똑같이 생긴 두 사람이 벌이는 궁중 코미디"로만 봤는데, 시간이 흘러 다시 보니 웃음보다 훨씬 무거운 무언가가 남아 있었습니다. 권력의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이 그 자리의 무게를 결정한다는 것을요.광해군과 하선, 같은 얼굴 다른 시선 — 시대적 맥락영화의 배경은 조선 중기, 광해군 재위 시절입니다. 역사적으로 광해군은 당쟁과 외교적 위기 속에서 복잡한 선택을 반복했던 군주입니다. 영화 속 광해군은 신하들의 독살 시도를 의심하며 은수저로 독을 확인하는 장면부터 등장합니다. 은수저의 색이 변하..
상을 많이 받은 영화가 반드시 가장 좋은 영화일까요? 솔직히 저도 미나리를 보기 전까지는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에 아카데미까지 거론되는 작품이니 기생충 같은 긴장감과 반전이 있을 거라고 당연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든 감정은 예상과는 꽤 달랐습니다. 이 영화는 거대한 사건 없이도 오래 남는 영화였고, 동시에 왜 이 작품이 이 시점에 이토록 주목받는지 곱씹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이민자 정서: 미국 영화인데 왜 이렇게 한국 냄새가 날까일반적으로 미나리를 한국계 미국인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소개하지만,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조금 달랐습니다. 배경은 분명 1980년대 아칸소 허허벌판이고, 대사도 대부분 한국어인데, 이 영화는 제가 알고 있는 미국 이민자 영화의 문법을 ..